[칼럼] 희망 사항과 현실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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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혜

김성혜 문인(시카고)

 

아무리 생각해도 난 꿈에 붕 떠서 사는 여자다. 특히 문화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탓에 워싱턴 디씨를 가면 스미소니언은 빼 놓지 않고 가려고 애쓴다. 갈 때 마다 그 허다한 볼거리 중 발이 떨어지지 않아 뱅뱅 돌고 다시 돌아 구경하고 또 하는 것이 몇 있다. 프랑스 혁명 시절 마리 앙트와넷의 것이었다고 하는 콩알만 한 두 개의 금강석 귀걸이와 황제 나폴레옹이 마리 루이에게 주었다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다. 다행히 둘은 같은 방에 나란히 있어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귀걸이를 넋을 잃고 보다가는 돌아서서 마리 루이의 목걸이를 다시 정신 나간 듯 바라본다. 누구나 하나씩 가진 금반지 하나 없는 주제에 어찌 감히 황녀들의 것은 침 질질 흘리며 구경하는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봐도 한심한 인간, 철없는 인생이다. 넋 잃고 바라보다가는 “주인은 어디 가고 목걸이와 귀걸이만 여기 남아 있을꼬….” 해 보기도 한다.

“박사님께서는 홈리스의 장례식도 해 주신다고 들었어요.”

“예. 그야말로 조촐하기 그지없긴 하지만 누군가 해 줘야겠다 싶어 시작했습니다.”

“장례식 해 주게 된 동기가 있는지요?”

“동기까지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신장이식을 했던 환자 때문이었지요.”

“무슨 이야기이신지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보스턴에서 홈리스들의 의사로 일하고 있는 제임스 오코넬 의사와 기자의 인터뷰가 라디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듣는 등 마는 둥 하고 있었는데 홈리스의 장례식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신경이 모아졌다.

“신장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여자였지요. 드디어 기다리던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여자가 제게 부탁이 하나 있다고 하더군요. 뭐냐 했더니 사진 한 장 찍어 달라는 거예요. 그때까지 저는 홈리스의 사진찍기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찍는 것은 그들의 의사로 일하면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갖고 있었던 때문이었지요.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팔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이 환자의 청을 받고는 싫다 할 수가 없어 그녀가 원하는 날 사진기를 갖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화장하고, 입술 빨갛게 그리고, 머리도 잘 빗고 기다리고 있질 않겠습니까? 그래서 참 예쁘다, 웬일이냐고 물었지요. 그녀의 대답을 아직도 기억해요. ’23년 전 어린 두 딸을 두고 떠났는데 혹 내가 수술하다 잘못되어 죽으면, 혹 내 딸들이 날 찾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겠다 싶어서요. 가능하면 엄마가 추잡하고 못났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진 않아요.’ 라고 답하더군요.” 오코넬 의사는 말을 잠시 끊었다.

“홈리스도 여자는 여자이고, 엄마는 엄마구나 하는 사실이 가슴에 쾅하고 와 닿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사진을 찍어요. 또 찍었던 사진을 장례식 때 영정으로도 쓰고요.”

“아, 그래서 사진 찍기 시작하셨군요. 궁금하네요. 그녀는 어찌 되었나요? 혹 딸과 만날 기회가 있었나요? 딸이 찾아왔던가요?” 기자의 질문이다.

“웬걸요. 벌써 수년 전 일인데 그녀는 죽었고 아직껏 그녀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사진은 제가 그냥 갖고 있지요.”

“그래도 엄마는 혹 내 딸이 날 찾아오면…. 하는 꿈은 갖고 있었네요.”

“그렇지요. 또 그 딸이 찾아오면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모습은 병들어 죽어가는 홈리스의 모습은 아니었던 겁니다.”

“아, 예. 그렇군요. 그처럼 홈리스의 희망 사황과 현실 상황은 거리가 있기 마련인가 보네요.”

그 거리가 어찌 홈리스에게만 있겠는가? 가락지 하나 없이 비어있는 내 열 손가락. 아무리 그런 주제라도 이름난 황녀들의 금강석 귀걸이, 목걸이는 침흘리며 우러르는 꼴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