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LT Thomas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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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교회 담임/미육군 채플린)

로마에 바울기념교회는 그가 순교당할 때 몸통에서 잘려나간 바울의 머리가 바닥에서 세번이나 튕겨졌고, 각각 그 세곳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되었고, 이를 기념해 “Tres Fontes”(세개의 샘물) 교회라는 별칭을 가지게되었다고 합니다. AD 67년, 차가운 대리석 기둥위에 바울의 목이 놓이고, 로마 군병의 칼에 그의 머리는 몸둥이에서 떨어져나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의 죽음은 누구도 흠모하지 않을 끔찍한 것이며, 성공적인 삶으로 인생을 마감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검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샘물이 솟아나듯 그의 삶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깊은 영감과 감동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같은 사도 바울은  평생 자신의 삶이 “이방을 위해 선택된 그릇”(Chosen Vessel)으로 여기며 타민족과 문화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여전히 빚어지고 있는, 곧 명장 도예가의 손에 맡겨진 질그릇(Vessel)이라 여기며 담대히 살아간 인생였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그의 책, Wisdom for the Long Walk of Faith,에서 미켈렌젤로와 대리석안의 사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조각가가 거대한 대리석앞에서 망치와 정을 사용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옆을 지나가던 어린 한 소년은 그 바윗덩어리에서 떨어 지는 크고 작은 돌들을 보면서, 도대체 그 조각가가 무엇을 만드려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몇 주가 지난후 조각가가 일하는 장소에 다시 나타난 그 소년은 자기앞에 벌어진 일에 그만 기절할 듯 놀라가 됩니다.  바로 큰 대리석이 서있던 장소에 늠름하고 힘센 그리고 살아있는 듯한 거대한 사자가 서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년이 그 조각가에게 묻습니다, “아저씨, 이 바위속에 이런 멋진 사자가 있는 줄 어떻게 아셨어요?” … 말하자면, 조각가란 돌덩이안에 숨어있는 사자를 볼 줄아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가슴에 품고 맘속으로 그리면서 쓸데 없는 모난 부분과 군더더기들을 망치와 정으로 쪼아내며 멋진 작품을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같이 조각가의 맘속에 그려진 작품과도 같으며 도예가의 손길안에 있는 질그릇과 같다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한주간 딸아이 이사하는 것을 돕기위해 워싱톤디씨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늘 맘속에 빗진 맘으로 남아 있던 옛 전우를 보고자 알링톤 국립묘지에 있는 그의 무덤을 처음으로 찾았습니다. 묘비엔 스물 여섯의 나이로 이라크에서 전사한 탐 브라운 소위의 이름과 전사한 날짜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가슴속에서 언제나 잊을 수 없었던 그의 최후의 순간과 날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와 함께 갔던 가족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묘비를 가슴에 안으며 자녀들과 함께 그의 영혼과 남은 그의 가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서 살아있는 자로서의 삶의 부담과 그의 희생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할 수 있었습니다. 부라운 소위는 평생 만나보지도, 가보지도 못한 전쟁터의 이름모를 작으마한 도시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젊은 날에 죽음을 맞은, 성공적이도 흠모할 것도 없는 삶을 산 젊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대리석안에 숨겨진 사자처럼, 도예가의 손안에 빚어진 질그릇같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창조주의 작품으로 이세상을 살아간 멋진 인생였음을 믿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 누군가의 가슴안에 잊혀지지 않는 영웅으로, 끊임없이 삶의 영감과 도전을 가져다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교자 사도바울의 권고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 사지 마십시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에 눈을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 (Don’t fix your eyes on what is seen, but what is unseen.) 2Cor. 4,18-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