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월이 가장 잔인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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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 생기와 향기를 풍기고 새나 사람이나 사랑을 찾아 둥지를 틀며 생산과 회복의 희망과 기쁨이 넘쳐나는 4월을 영국 시인 엘리엇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부르니 무슨 말인가? 그는 433행 5부작 장시 황무지를 이렇게 시작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이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흔든다/ 겨울은 따뜻하였어/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은 마른 구근으로 이어주었지.

1922년에 발표한 황무지의 현실, 영국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1차 대전으로 세계는 폐허가 되고 1918-20의 스페인 독감은 1억의 생명을 앗아가며 세상을 황무지로 만들었다. 엘리엇과 그의 부인도 1919년 12월 이 독감으로 앓다가 회복 중에 이 시의 많은 부분을 썼다. 생산과 성장, 회생과 신뢰가 불가능하게 상처 입은 땅에 갇히어 존재의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다.

눈이 녹고 꽃이 피어 농사를 시작하고 수확을 내다보는 가운데 젊은이는 사랑을 꿈꾸고 생산과 번성의 희망을 설계하는 4월, 산산조각 깨어지는 희망, 실현못할 가능성이 우리를 조소한다면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 아닌가! 낭만과 정서, 신앙에 맞서 근대주의 매마른 지성으로 초월자를 배제하며 오는 덧없는 추억과 공허한 욕망의 황무한 현실, 런던 거리는 단테의 신곡 지옥의 모습이리라.

시카고 대학의 제임스 밀러 교수는 황무지를 엘리엇의 개인 생활에서 찾았다. 엘리엇이 1910년 프랑스 유학시절 만난 한 의대생에 특별한 감정을 가졌는데 그가 해군으로 참전하여 1915년 4월 전사하자 큰 충격을 받고 급하게 결혼했지만 바라던 행복은 멀고 불행만 연속, 1921년 결혼관계 회복을 위해 스위스 로잔 호수가에서 휴양하며 쓰기 시작한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잔인한 상실감이라 지적한다.

오늘 코비드 팬데믹으로 세상이 닫히고 겨울같은 1년을 보내며 가까운 친구라도 멀리하고 잘 나가던 사업이 문을 닫고 가족이라도 감염되어 혼자 고생하다 회복되지 못하고 쓸쓸하게 떠나다니 희망하며 치유를 기다리던 이에게는 이 보다 더 고통이 있을까! 생명이 사라진듯 겨우내내 앙상하던 나무들이 봄빛 받아 싹을 내고 피어나며 활기를 발산하는데 어떤 것은 매마른 가지 그대로를 고집하고 있다면 생명과 죽음을 갈라놓는 잔인함이 아닌가! 엘리엇은 시의 마지막에서 황무지에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지만 관건은 봄비를 받아드리는가 함이다.

인생 황무지에 예수께서 나타나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외친다. 그가 안식일에 병을 고칠까 의혹하는 자는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은지를 잔인하게 직면한다. 주인에게 다섯을 받은 종은 장사하여 다섯을 더 남기는데 하나를 받은 자는 잃을까 두려워 땅에 묻어 둔다. 주인이 계산하며 남긴 자에게 충성되다, 묻어둔 자에게 악하다고 하며 그 하나를 빼앗아 열개 가진 자에게 주라. 가진 자는 더 가질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데서 무엇을 느끼나? 그를 믿고 받아드리면 신분, 처지에 상관 없이 치유와 생명 구원을 얻는데 그를 멸시하고 외면하며 반대하여 제거한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부활 생명으로 풍성한 4월에도 여전히 불신과 거절로 불모와 절망을 고집한다면 이는 가장 잔인한 일이 아니겠는가? 생명과 평안과 자유는 누구의 것이기에!! (www.onesoulministr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