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특집] 한미장로교회 이종형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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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한인들의 은퇴후 삶 이야기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삶”

은퇴후에도 아프리카 등에서 왕성한 사역 활동으로 귀감

 

이민연륜이 깊어짐에 따라 시카고 한인사회도 점차 고령화되면서 은퇴를 하는 한인들이 계속 늘고 있다. 통상 은퇴는 직임에서 물러나 한가히 지내는 것으로 일컬어져왔다. 하지만 요즘은 은퇴 후에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보람되는 활동을 하면서 황혼이지만 새로운 인생을 사는 은퇴자들이 적지 않다. 본보는 은퇴 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타인의 귀감이 되는 한인들을 만나 그들의  제2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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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목사(74,사진)는 1994년 한미장로교회 6대 목사로 부름 받아 13년간 열정적으로 사역을 하다 지난 2007년 공식 은퇴했다. 이 목사는 은퇴후에도 목회자 없는 여러 지역 교회를 다니며 사역을 하고, 2012년에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소재 명성의과대학 교수로 사역하는 등 현역 못지않게 왕성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다.

 

-한미장로교회 시무 당시 어떤 사역을 했는지

“하나님의 교회이기에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마음으로 목회를 했다. 내가 시무할 당시 2세 예배 활성화를 위해 영어예배를 신설했고, 매일 새벽예배를 드렸으며 수요연장자학교도 개설했다. 지역사회 봉사활동 등을 통해 올바른 예배생활을 인도하고 이웃전도 훈련과 선교에 집중했다. 또한 이민자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한미장로교회 시무 당시 많이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기억나는 것은 한 성도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주 도둑질 당한다는 것이다. 가게주변을 살펴보니 열악한 지역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사명을 갖고 그는 신학교를 가서 안수받고 파송돼 노숙자들을 위한 센터에서 사역을 하게 됐다.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고 찬양을 부르며 그들을 돌봐주니 알코올중독, 총기딜러 등 죄악에 빠졌던 그들이 주님을 만나고 직업훈련을 받는 등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됐다고 한다. 지역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이웃을 섬기는 마음을 배우고, 도움을 받은 이들은 삶의 변화를 경험한 것이다.”

 

-한인이민교회를 이끌면서 느낀 것은

“미국에서 목회를 시작하며 초기에 발견한 것은 많은 교인들의 마음이 상처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꿈으로 이민열풍이 불어 들어온 이민자들의 환상은 산산조각 났다.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인해 의사소통에 힘들어하고, 인종차별 당하는 등으로 알게 모르게 이민자들 마음엔 상처가 가득해지고 있었다. 힘든 삶속에서도 한국인의 인내심을 발휘하듯 궂은 일을 마다않고 열심히 일했고, 미래를 바라보는 꿈을 놓지 않았다. 결국 이민자들은 자녀교육에 헌신하며 안정된 삶으로 천천히 정착해갔다. 하지만 그들이 이민생활 정착과정에 생긴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못했기에 굶주린 영혼의 불평, 불만은 계속되어 그들이 미국에 올 때 가졌던 꿈을 향한 ‘비전’을 다시 찾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3가지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민자들을 위해 제시한 3가지 비전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예배드리고 성경을 바르게 앎으로서 알게 되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비전’, 두 번째는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기위한 ‘스스로의 비전’, 세 번째는 살아가며 자기의 삶의 위치와 나가야할 방향은 어디인가를 알기위한 ‘교회 밖을 향해서의 비전’. 이 세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비전엔 신앙의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해 실천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시무 당시하게 된 것이다.”

 

-은퇴를 앞두고 교회를 떠나는 것이 힘들지 않았나.

“전혀 아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심부름꾼일 뿐이다. 우리들은 열매로서 열심히 씨를 뿌리지만 열매를 자라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다. 필요한 곳에 있으라하면 있는 것이고 가라하면 가는 것이라 65세에 은퇴를 결정했다. 그 결정 후 2가지 생각을 했는데 첫 번째는 젊은 목회자에게 더 나은 기회를 줘야하고 두 번째는 목회하는 동안 하지 못한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은퇴 후 8년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1966년 전도사를 시작으로 2006년 은퇴까지 40년의 목회자의 삶을 돌아보니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이 부족했기에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생각이셨다. 500여명의 성도가 있는 미네소타 한인교회에 목사가 없으니 목회를 맡아 달라하여 후임목사 청빙 전까지 1년 1개월 동안 맡았다. 그후에도 목회자가 없는 교회를 위해 디트로이트에서 1년 반, 다시 미네소타로 1년 반을 섬겼다. 그 후 에티오피아 명성의과대학에서 교목 및 교수 사역을 2년 동안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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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목사가 명성의과대학 남학생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사역을 하게 된 계기는

“미네소타에서 목회하던 때인 2007년, 잠시 에티오피아 신학대학원 교수 겸 한인교회 목사로 초빙돼 같은 지역에 위치한 명성병원 숙소에 머문 것이 인연의 시작이 됐다. 그때 명성병원측에서 청빙했지만 당시에는 응하지 못하다가 2012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설립된 명성의과대학 개교전 아내(백남선 사모)와 가서 도왔다. 명성의과대학은 학생 전인교육과 전인케어 의사를 만들기 위하여 의료 지식 기술 배양시켰고 그곳에서 나는 온전한 인격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도왔다. 영적인 전인 훈련을 위해 매일예배, 그룹별 성경공부, 윤리 및 세계관 강의, 소그룹 멘토링 프로그램, 특별 영성 주간, 개인 상담과 심방을 행하고 지역사회 봉사를 병행했다.”

 

-에티오피아 사역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에티오피아 사역당시 어느 날은 예배가 끝나고 한 현지인이 양을 데리고 와 오늘 이 양으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말하더니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전통목걸이를 그 앞에서 부수고 ‘나는 이제 예수의 사람이다’ 라고 고백하더라. 그때 사역자들 모두 감격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학교 외의 사역으로는 어떤 일을 했는지

“현지 교회 목회자들을 교육하며 현지 교회들을 방문하여 격려하는 일을 했다. 아디스 아바바에서 3시간 떨어진 나사렛(현지명칭: 아다마)지역 한인교회 주일예배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했다. 후원사역으로 이웃 유니티대학 기독학생회 사역 후원, 아가타지역 교회당 건축, 복음의 소리교단 교회당 건축, 데브라 제트지역 우물 설치 등을 했다. 이 모든 사역에 함께한 하나님과 후원자들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2년간 에티오피아에서 사역하다 철수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건강주시는 동안 우리 부부는 생명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각오로 해왔다. 어느 날 부터인가 아내 백남선 선교사가 밤이면 숨이 갑갑하다며 잠을 설쳤다. 알아보니 표준 95~100% 체내 산소량을 유지해야하는데 해발 2,400 미터인 고산지대에서 지내는 것이 원인이되어 고산병에 걸려 체내 산소가 81%까지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또한 자녀들의 강한 요구로 더 이상 머물기 어려워 철수를 결정했다. 보통 90%이하로 내려가면 뇌나 심장에 손상을 주는데 지금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돌아와서 딸들이 살고 있는 뉴저지, 휴스턴에도 다녀왔지만 당분간은 시카고에 계속 있을 계획이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은 목사출신 영어가능자로서 병원, 교도소를 일주일에 1~3번 방문해 그들을 상담해주는 봉사를 하려고 한다.”

 

-한인 이민교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민초창기 한인교회가 없었다면 현재 한인들이 제대로 잘 정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교회가 해온 역할이 크다. 앞으로도 교회들은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한다. 현재 이민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세 사역에 있어 그들을 인정해주고 세워주는 것이다. 1세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1세와 2세가 동등한 위치를 가져야 세대가 세대를 이어나가는 교회가 될 수 있다. 또한 1세와 2세의 다른 문화, 언어, 세계관에 있어서 교류하고 융합하는 일을 교회가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한인교회가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일리노이 전체를 품을 수 있도록 깨어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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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명성병원 앞 정원에서의 백남선 사모와 이종형 목사.

-은퇴를 앞둔 목회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섬긴 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이기에 온전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김으로 손 놓고 은퇴할 수 있는 마음으로 은퇴해야한다. 그리고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의미있고, 창조적이고 생산적 인지를 연구하고, 계획하고, 준비해야한다. 준비된 자는 분명 하나님의 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그것을 믿고 맡기는 삶을 살면 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49년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왔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으로 부족하나마 이 일들을 할 수 있었기에 주께 찬양을 드리고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 또한 올해 결혼기념일 50주년을 맞은 나의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홍다은 기자>

 

<이종형 목사 약력>
– 1941년 경상남도 울주 태생.
–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학 학사, 장로회 신학대학(서울) 석사
– 1975년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 뉴욕 올바니한인교회 담임
– 1978~81년 버지니아 샬롯츠빌 한인교회 개척
– 1981~83년 피츠버그 한인중앙교회 초대목사
– 1984년 뉴욕 동광장로교회 개척
– 1983년 유니온신학교(VA) 교회사 박사(Ph D)
– 1983~84년 장로회 신학대학(서울) 역사신학 교수
– 1988~94년 한인해외선교 조직 및 회장
– 1989~94년 뉴욕 성서대학 설립, 초대학장
– 1994년 7월 1일 시카고 한미장로교회 부임
– 1997년 우리민족 서로돕기 시카고지부 대표
– 2006년 7월 31일 한미장로교회 사역 종료
– 2007년 3월 31일 한미장로교회 공식 은퇴
– 2012~14년 에티오피아 명성의대 교수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