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힘들었고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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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루시 백 위원장

 

루시백 위원장

지난 5월 23일 뉴저지주 포트리 타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2년간의 노력 끝에 세워졌다. 이로써 미전역에서는 2010년 처음 기림비가 건립된 이래 지금까지 총 9개의 기림비가 세워졌고 소녀상도 4개나 건립됐다. 시카고에서도 위안부 소녀상 건립 운동이 이미 4년전부터 시작됐다. 모금운동도 순조로웠고 소녀상도 제작돼 도착했다. 그러나 장소가 문제였다.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아, 시카고는 미국내 위안부 기림비나 소녀상을 건립한 한인커뮤니티라는 명예를 여전히 얻지 못하고 있다. 위안부 소녀상 건립 운동의 중심에는 루시 백씨가 있다. 2014년 7월 31대 시카고 한인회 당시 발족한 ‘위안부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이하 소녀상추진위)의 초대 위원장이자 아직도 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인회 이사장인 남편 백종호씨와 함께 이사회에 참석했다가 우연찮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그날부터 4년 가까이 시카고에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그는 동분서주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녀의 헌신적인 봉사와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해준 동포들, 그리고 한인회 등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모금에서 소녀상 제작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풀렸다. 하지만 장소가 마련되지 않아 오래전에 시카고에 도착해 있는 소녀상은 수년째 빛을 못보고 있다. 추진위 결성 4년을 앞두고 루시 백 위원장을 어렵사리 만났다. 그토록 오랫동안 열심히 뛰었음에도 아직 장소를 찾지못해 건립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말을 몹시 아꼈다. 아직도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간절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기에 언론과의 접촉이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동안의 어려움에 대해 다 털어놓고 싶기도 하지만 소녀상을 반드시 세워야하기 때문에 아직은 말을 아껴야한다면서 특정 내용은 쓰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적잖게 했다. 그러나 백 위원장은 소녀상 건립의 희망을 놓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으며 동포들 마음속에서도 소녀상이 흐릿해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간절히 전했다.<편집자 주>

 

■ ‘후쿠가와 노부에’, ‘루시아’ 그리고 ‘오신길’

우연찮게 소녀상추진위 위원장직을 맡게 됐지만 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내 두 언니가 떠올라서다. 아버지는 언니들이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학교도 안보내고 예쁘게 치장할 나이에 고무신에 수건을 두르게 하는 등 마치 아줌마처럼 보이게 하고 다니게 했다. 언니들이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는 기혼자 같이 보이게 하려고 8살정도 밖에 차이 안나는 나에게 언니들을 엄마라 부르게 하며 꼭 붙여 내보냈다.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언니들은 국민학교 이상 교육도 못 받았는데, 난 해방되고 교육을 잘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늘 미안했다.

한국이름을 쓸 수없었던 시절에 태어난 나는 해방되는 날까지 이름은 ‘후쿠가와 노부에’였다. 카톨릭 신자였기에 아버지는 일본이름 대신 집에서 세례명인 ‘루시아’로 불러주었다. 해방직후에 나는 내 이름을 처음 알았다. 바로 ‘오신길’이라는 것을. 언니들이 어린 나이에 아줌마 행세를 해야했고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한국이름이 있어도 불리지 못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시기에 속거나 끌려가야만 했던 분들의 설움이다. 누구도 돈을 벌기위해 자발적으로 간 사람은 없다. 더욱이 많은 이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갔다. 35년이란 강제적 지배도 원통한데 지금도 일본 때문에 무엇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30명도 채 안남으셨다. 나는 내 아버지, 언니들 그리고 조국을 위해 해보겠다는 열정으로 시작했고 계속 해나갈 것이다.

3년전 시카고에 도착 한국의 김운경-김서경 부부 작가가 제작한 위안부 소녀상. 아직도 포장된 그대로다.<사진=루시백>

■ “이들이 있었기에…”

2014년 8월, 시카고한인축제에서 모금함을 놓고 모금을 하고 있던 중 9살 어린 소녀가 다가오더니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었더니 아이는 “우리 엄마, 아빠, 오빠 모두 한국 사람인데 이런 이야기는 전혀 해주지 않았어요”라고 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후 아이는 고사리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엄마가 한인축제에서 쓰라고 주었다는 25센트 2개를 모금함에 넣었다. 그 아이가 바로 소녀상추진위의 두번째 후원자다. 한 할머니는 모금소식을 접했지만 당장 돈이 없어 후원을 못한다며 미안해 했다. 괜찮다고 했는데, 얼마 후 100달러 체크를 가져왔다. 본인이 갖고 있던 것들을 팔아서 마련한 돈이라며 손에 쥐어 주던 그 순간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축제에서 만난 어린 소녀의 50센트는 1천달러와 같고, 할머니의 100달러는 1만달러과 같이 그 마음이 참 소중하다. 이러한 정성에 힘을 얻어 2015년 7월까지 1년간 쉬지 않고 모금활동을 벌인 결과, 500여명의 개인 및 단체로부터 총 5만2천여달러가 모이게 됐다.

■ 반대와 지지의 목소리

어느 날은 일본 총영사관에서 만나자고 해 거절을 했다. 그 이후 내가 살던 그 동네에는 올 이유가 없는 일본 영사관 차가 몇시간 동안 주차되어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차가 있는 날엔 모금하러 나가지 않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하고 몇몇 한인들로부터 ‘왜 더러운 것을 꺼내려고해’, ‘지나간 일을 왜 꺼내냐’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듣게 됐다.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해도, 한국 사람으로서 반대하는 이유들을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라도 안하면 대체 후세들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알겠어요’라고 되풀이 할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만난 젊은이들 중에는 단 1명도 부정적으로 말 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돈이 없어 못 도와줘 미안해하거나 다른 도울 일 없냐며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나에게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됐다. 동상이 세워지면 젊은 후세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누구와도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 나라를 잃지 않았으면 아무도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절대 부끄럽고 더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열고, 우리의 역사를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어떤 모양으로도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의무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서럽고 힘없이 끌려간 위안부들은 우리의 언니들이고 누나들이며, 그분들의 고난은 나라의 고난이고 우리의 고통이다. 고통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동상을 건립해 희생되신 그분들의 희생을 기리고 역사를 바로 지켜야한다.

■ 소녀상은 반드시 건립돼야 한다

소녀상 건립 추진이 시작되고 소녀상이 시카고에 도착한 해가 광복 70주년이었다. 그 해 8월 15일에 세우고 싶었던 바람은 어느덧 3년이 더 흘렀다. 여러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밥 잘먹고 부유하게 살아도 지나간 역사는 바꿀 수 없다. 나라 잃은 설움을 극복하고 우리는 잘된 사람들이니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이 아픈 역사는 우리 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다신 일어나선 안된다는 상징성이 있다. 독일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미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누구도 이것이 명예롭기 때문에 세운 것이 아니라 다신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세워진 것을 알고 있다. 소녀상도 누구를 또는 무언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다시는 반복되면 안된다는 관점으로 기억해주고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4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위안부 소녀상이나 기림비가 설치된 미국내 여러 지역들을 보면 오랜 시간과 노력과 헌신으로 쉽지 않은 과정을 걸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세워졌다. 이 동상은 반드시 세워져야만 하고 세워지는 그 곳이 역사적 상징성을 갖는 무엇보다도 의미있는 장소가 되리라 확신한다. 우리 역사를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것을 어떻게 자녀들과 모두에게 알리고 이해시키겠는가…

※루시백 위원장은 1937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1962년 전남 의대를 졸업하고 1965년 도미해 1969년부터 2006년까지 시카고지역에서 소아과 의사로 재직해왔다. 2014년부터 위안부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홍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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