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42] 뷸라 V. 번즈(Beulah V. Bou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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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나눔교회 담임)

가장 귀중한 사랑의 가치는 희생과 헌신이다. 이러한 삶을 살았던 분이 뷸라V. 번즈 (Beulah V. Bourns)이다. 1906년 3월28일에 캐나다 뉴브런즈윅 해블록에서 출생한 그녀는 한국에서 마데테레사라 불리울 만큼 가난하고 소외계층에 있는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는 정신적 지주였다. 페스탈로치가 말한대로 “내가 고아를 기르기 위해서는 내 자신부터 고아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 있듯이 행동으로 헌신적 삶을 살았다.

연합교회 기관지인 옵저버에도 ”한국의 고아를 돌보는 뷸라 아주머니라”라는 제목으로 사역을 소개한바 있다. 1932년 캐나다 연합교회 소속으로 간호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 받아 42년동안 사역을 했는데 이중 35년을 간호사역과 사람을 일꾼으로 양성하는 교수 사역을 해왔다.

1932년 한국에 처음 와서 함흥 제혜 병원과, 만주 용천에서 보건 간호사업, 함경북도 회령에서 보건 간호사업, 다시 함흥 제혜병원 간호원장으로 간호사 양성 교육을 통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간호교육을 마친 간호사들이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성례전을 거행하는 것 같다고 증언한다. 함경도 회령에서는 6년동안 순회 사역을 하며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매월30-36개 아기 클리닉을 포함하여 공중보건, 간호교육, 엄마교실, 바느질 수업등 전인적인 사역을 해왔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한국의 간호 교육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일제 강정기와 한국 전쟁의 격변기 시기에 간호사로 또는 교수로 가르치며 고아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특히 과부, 고아, 어린아이,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동료 선교사인 엘다 스트러서스 (Elda Struthers)는 번즈 (Beulah V. Bourns) 와 함께 한달동안 순회 하면서 소아과 진료를 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엄마들이 모여들어 수많은 아이들이 건강을 검진 받았고, 우유대신 먹일 수 있는 두유 제조법을 배웠다고 증언한다.

한국 전쟁이 발생할때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아들과 난민들을 섬기며 포기했던 아이들을 자기 집에서 데리고 와서 돌보므로 그녀의 집에는 항상 아픈 아기들과 엄마들이 있었다고 한다. 돌봄을 받은 산모들은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번즈를 돕던 한국 간호사들 역시 그녀로부터 배운 한신과 사랑과 정성으로 동역하게 되었다.

한국의 아픔의 현대사를 함께 동참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낌없이 실천해온 번즈 선교사는 일제 탄압과 신변의 위협속에 본부의 소환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성도들을 위로하고 병원을 지키며 간호사를 배출하는 양성학교를 운영했다. 끝까지 한국에 남아있던 번스는 전쟁 포로로 억류되어 일본군 포로와 교환되는 고초도 겪기도 했다. 한국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한 헌신은 란스 헤브너 신학자가 말한대로 85%가 아닌 100% 헌신이다. 사랑이란 전체와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85%와 15%의 결합이 아니라 100%와 100%를 바꾸는 것이라 했다. 그녀는 1974년 은퇴후 캐나다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다가 1990년 84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참고문헌: 한국교회사, 양화진 선교사의 삶, 캐나다 연합교회 기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