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중서부에 헤이그 특사 이상설 후손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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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순국100주년 맞아 새롭게 조명

3.1절 맞아 감회 새로운 후손 형제들

 

보재 이상설 선생의 동생 이상익의 첫째 아들 이관희의 자녀들. 이재홍, 이재풍, 이재경, 이재은, 이재승(왼쪽부터)

 

올해 3.1절을 맞아 특히 감회가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 110년전 헤이그 특사 정사로 파견된 보재 이상설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지금 일리노이와 미시간주 등 미국에서 살고 있다. 2017년은 보재 이상설 선생이 순국한 지 100주년을 맞는 해다. 한국에서 기념사업과 기념관 조성 등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 이들에게는 뿌듯하다.

그의 후손들로부터 독립운동의 큰 인물 이상설에 대해 직접 들었다. 그리고 100년전의 이상설이 지금의 후손들과 후세에 어떤 의미인지도 들었다.

이상설은 헤이그밀사 3인(이상설, 이준, 이위종)의 리더로 당시 고종황제의 친서를 들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갔다가 이후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역땅에서 산화한 인물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초석을 다진 인물로 알려진 이상설 선생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의 유언 때문이다.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헤이그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왼쪽부터)

 

자신의 모든 유품을 모두 불태우라는 그의 유언대로 그의 모든 흔적들은 러시아 아무르 강변에 뿌려졌다. 하지만 그의 희생과 헌신은 최근 여러 학자들을 통해 역사적 문헌 및 자료들이 발견되면서 100년이지났지만 대한민국 역사 깊숙이 뿌리 박고 있었기에 그가 살아 생전 일군 업적과 다양한 학문적 자료들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일찍이 나라를 위해 일한 그는 많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지만 현재 살아있는 후손들이 그의 발자취를 지금도 찾아 나서고 있다.

이상설은 아들 정희와 딸 가희를 두었다. 아들과 손자 3명이 모두 사망해 이상설의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 이상익의 아들들이 유품과 기록들을 보관했다. 이상익은 관희, 양희, 완희를 두고 관희씨의 6남매 재흥, (고)재열, 재경, 재풍, 재승, 재은을 뒀다. 이상익의 첫째 아들 관희씨는 생존에 보재 이상설 선생에 관해 국민들에게 현양을 할 수 있음 좋겠다 생각해 여러 일들을 이뤘고, 그의 아버지가 타계하고 그의 육남매중 재승씨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지금까지 자료를 모으며 이상설 선생의 흔적을 찾아나가고 있다. 현재 6남매중 고인이 된 재열을 제외한 5남매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보재 이상설(우)과 그의 동생 이상익.

 

미시간대 이재승교수(원자력공학)와 이재풍 피부과 전문의를 통해 그들이 전해듣고, 받은 이상설 선생의 흔적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재승교수는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50년이 넘도록 여러 자료들을 모으고 한문으로 쓰여진 자료는 번역해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하는 등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이상설 선생의 과거시권(문과 급제 시험지) 원본을 기념관이 갖춰지면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헤이그 밀사 3인이 전세계에 한민족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렸고 3.1운동도 연장선 상에 있으며 우리 민족의 근대사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일리노이 디케이터에 살고 있는 이재풍 전문의도 “증조부님은 재산, 인생, 생명을 바쳤다”면서 “수많은 선조들이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나 또한 노력하고 있다”고 선조의 정신을 되새겼다. <이상설 후손 인터뷰 특집 내일자에> <홍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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