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2017] “7.4 공동성명이 성장의 기폭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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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회장, 이윤모 초대 편집국장

시카고 한국일보 창간 46주년 특별 대담

시카고 한국일보가 창간 46주년을 맞았다. 반세기 가까이 성장하고 서있으려면 뿌리가 있어야 한다. 시카고에 최초의 한인언론 한국일보를 세운 김용화 본보 명예회장과 초대 편집국장을 지낸 이윤모박사를 모시고 그 역사의 시작을 들었다. 대담은 한국일보 세미나실에서 지난 14일 진행됐다. 다음은 이들의 대담으로 풀어 정리한 1971년 봄 창간 당시와 현재, 그리고 한인언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편집자 주>

1971년, 클락 길에서 시작

김용화 회장(이하 김): 1971년 3월 5일, 클락 길에 시카고 한국일보가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시카고에는 한인 언론사가 없었다. 우리가 유일했다. 워싱턴 동아일보를 받아봤는데 거리상 문제가 있으니 3, 4일 정도는 늦은 소식이었다. 우리는 소식을 더 빨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직접 비행장에 가서 에어 메일로 신문을 받았다. 가장 빠른 신문이자 미 중서부의 첫 한인 신문이 탄생했다.

처음 신문을 발행했을 때는 고독한 신문이었다. 무관심과 싸웠다. 기대도 없고 격려도 없었다. 지금처럼 TV나 스마트폰 등으로 뉴스를 접할 때가 아니었다. 밀어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독자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 건물은 클락 길에 있었고 주변에 아리랑 식품, 코리아 하우스 등 한인 가게가 10개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문 제작 방식은 험난했다. 내가 직접 인쇄기 다루는 법을 LA 한국일보에서 배워와서 공병우 타자기, 김동훈 타자기 등 한국에서 글자를 따와서 잘라서 붙이고, 사진 인화 등 모든 것을 혼자 해냈다. 당시 혼자 제작하다 보니 미숙한 점이 많았다. 내 손이 엉망인 이유다. 하지만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시카고 한국일보 설립자이자 초대 발행인 김용화<우> 회장과 이윤모<좌> 초대 편집국장이 본보 세미나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김일성 사진 첫 호외 반응 폭발적”

김: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당시 박해달 한인회장에게 부탁해 한인 주소록을 좀 달라고 했다. 열심히 신문을 만들어 보냈는데 딱 1명에게 답장이 왔다. 그만큼 무관심했었다. 전화도 해서 독자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판도가 바뀐 건 이듬해였다. 1972년 한국정부가 7·4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라디오를 듣다가 소식을 접했다. 당장 호외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처음으로 김일성의 사진이 신문에 나온 것이라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찍는 대로 나갔다. 그렇게 시카고 첫번째 호외는 대박을 쳤다.

이윤모 박사(이하 이): 72년도에 시카고 소재 레익뷰 하이스쿨에서 열린 행사에 한인 1천 명이 모인 적이 있다. 당시 한인 사회는 1만 명 규모였다. 한인사회 결집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희망을 봤다. 시카고 한국일보 첫 기자로서 우리가 시카고 커뮤니티의 파워하우스라고 생각했다. 큰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문을 연 이후 많은 기자들이 한국에서 왔다. 우리는 한인 사회에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문사 주최 세미나도 많이 열었다.

“비판에 협박과 폭행, 소송까지”

김: 잘못된 점에 대해 정당하게 비판했는데 신문사로 찾아와 우리를 폭행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얘기해 겨우 내쫓았다. 편집국장의 목을 조른 사건도 있었고, 폭행한 적도 있었다. 탈이 많았다. 소송을 4번 이상 걸었고 그 이상 당했다. 바른 소리를 내는 것이 참 어렵고 험한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국일보 식구들이 모두 함께 한 길을 걸었다는 것이 지금도 신기하다.

이: 부고에 이름이 잘못 나간 적이 있었다. 그 가족이 칼을 가지고 와서 ‘왜 이름을 잘못 썼느냐’고 항의한 적도 있었다. 독자 또는 이해관계자에게 맞은 적도 있고 참 다사다난했다.

2017년 6월 현재의 신문

김: 모두가 적자인 상황이다. 시카고 트리뷴도 엉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회사가 더욱 열심히 달려야 한다. 지면으로 독자와 대화해야 한다.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 시카고 뉴스에 1면 헤드라인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로컬을 더욱 늘리고 시카고 동포들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

이: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고 말했다. 프린트 미디어 시대는 죽어가지만 신문은 절대로 없어져선 안된다. 현재 한국일보는 오프라인 신문 발행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기사를 제공하고 있어서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본다. 독자들이 ‘한국일보 기사가 진짜 뉴스’라고 생각하도록 더 노력해야한다. 71년부터 변하지 않는 사실이자 영원한 사명은 진실을 보도한다는 점이다.

사진: 김용화 회장이 1971년 ‘제1호’ 지면을 보고 있다.

한국일보의 미래를 위한 조언

김: 싫은 소리도 마다않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 경기침체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문은 절대 없어지면 안된다. 정확한 사실을 올바르게 전달해야하고 듣기 싫고 회사 입장에서 곤란한 이야깃거리도 시원하게 꼬집어야한다. 독자는 냉정하다. 늘 객관적이고 올바른 소리를 내는 것이 신문이지 다양한 이해관계에 휘둘리면 안된다.

이: 사람들의 니즈를 따라가는 언론이 아닌 니즈를 창출하고 선도하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 46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동안 한인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곧 한국의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영어만 쓸 줄 아는 세대가 올 것이다. 결국 한국일보 시카고도 영문판을 제작해 계속 그 명맥을 이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신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가 흘러 넘치더라도 한국일보는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이라 믿는다.

켓지, 링컨우드 이어 글렌뷰로

시카고 한국일보는 2000년부터 LA미주본사 체제로 바뀌었다가 3년전부터 다시 시카고 자본의 신문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46년전 한인밀집지역인 클락길에서 시작해 켓지, 링컨우드로 사옥을 옮겼다. 현재의 글렌뷰 사옥으로의 이전은 2년전 이루어졌다. 한국일보의 사옥이전은 한인사회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진행=도태환 논설위원, 정리=신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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