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2017] “계속 자라고 번영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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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뷰 타운 공식 문장(紋章).

내가 사는 타운 이름의 유래…② 글렌뷰

 

우리가 사는 시나 타운의 이름이 어떻게 유래했는지를 아는 한인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짬을 내 내가 사는 동네의 이름에 대해 한번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이민생활에 흥미를 유발하지 않을까?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타운을 중심으로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주>

 

‘글렌뷰’(Village of Glenview)란 이름은 첫번째 시장이었던 휴 번햄이 지은 것이다. 1890년대 후반, 그는 현재 글렌뷰 시내에서 약 1마일 떨어진 곳에 살았다. 당시 그의 집 2층에서 시내를 볼 수 있었는데 그 경치가 아름다워 ‘Glen View’라고 했다고 알려진다. 1920년대 두 단어가 하나로 합쳐져 ‘Glenview’가 됐다. ‘계속 자라고 번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주민투표에 의해 선정됐다는 가설도 있다. 원래 글렌뷰지역은 ‘사우스 노스 필드’라고 불렸고 그 다음에는 ‘노스 브랜치’로 불렸다. 1878년에 프래드 허칭스는 ‘오크 글렌’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미 같은 이름을 가진 기차역이 있었기 때문에 대체할 만한 이름이 필요했다. 이후 공식적인 마을 이름을 찾지 못하다가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하던 우체국이 마을 사람들의 특별 회의가 소집될 때 공식 명칭을 선택하도록 요구했다. 당시 ‘Al Eustice’s Saloon’의 홀에서 열리는 마을 주민 회의에서는 Rugenville, Glenvarr, Glendale, Glen Grove, Glen Hollow, Oak View,  Glenview 등 다양한 이름이 후보에 올랐다. 마침내 1895년 5월 7일, ‘Glenview’라는 이름이 주민들에 의해 과반수의 표를 얻고 공식이름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지금의 글렌뷰 타운은 1830년대 초 유럽 최초의 이주민들이 도착하기 수백년 전부터 포타와토미 인디언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1833년 시카고 조약은 모든 원주민들이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이주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로 부족들이 차지했던 땅에서 농사가 가능해졌고 영국 제도에서 첫번째 정착민들이 오기 시작했다. 거주를 시작한 최초의 가족 중 하나는 영국에서 온 조지 헤스링턴 가족이었다. 헤스링턴 가족은 원주민들처럼 높은 지대의 땅을 선택했으며, 글렌뷰 타운의 초기 이주민들도 모두 원주민 트레일을 따라 정착했다. 글렌뷰는 1899년 공식 형성(incorporated)돼 올해로 118주년을 맞았다.<출처=글렌뷰히스토리센터, 글렌뷰타운 웹사이트><신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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