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세 숙모’장수가 주는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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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고모의 106세 생일 사진.<Amy Eisenberg/뉴욕타임스>

낙상 이후 정신 혼미할 때도 어린 시절 일화 들려주면 미소
시간 어떻게 보낼지 선택하고 삶 의미·상호연결의 힘 일깨워

도리스 고모가 107번째 생일을 2주 앞두고 타계했다.
나는 평생을 의료분야 전문가로 살았다. 종합병원 중역, 의료상담 컨설턴트와 건강관리 교수로 활동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임종을 앞둔 고모와 함께 보낸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나는 의료 전문 직업인의 경험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을, 삶과 죽음에 관한 귀중한 깨우침을 얻었다.
고모는 맨해턴의 같은 아파트에서 70년을 살았다. 친척집이나 노인보조시설이 완비된 양로 커뮤니티로 이주하기를 한사코 거부하던 고모는 103세가 되던 해에 낙상을 당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마지못해 입주 도우미를 채용했다.
그러나 이후 2년간 그녀의 건강은 급속히 약화됐다.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침대에 누운 채 거동을 하지 못했으며 목소리는 가늘어져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고모는 나와 처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내 임종을 지키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에이미가 “그럼 우리 집으로 모시겠다”고 하자 고모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엉엉 울었다. 그리곤 물기 가득한 감사의 눈빛으로 에이미에게 “정말 그래주겠니?”라고 속삭이듯 되물었다.
누가 보아도 도리스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듯 했다. 주치의도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는 지역의 홈호스피스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고모를 뉴저지의 집으로 모셨다.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그녀는 당장이라도 숨을 거둘 것만 같았다. 외부자극에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동공은 비어 있었다.
집에 도착한 후에도 고모는 침대에 누운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에이미는 고모의 집에서 가져온 가족사진들을 침실 벽에 걸어놓은 뒤 침대 옆에 앉아 사진 귀퉁이에 적힌 날짜와 그 안에 담긴 장면을 고모에게 일일이 알려주었다.
집으로 모신 후 2-3일이 지나면서 도리스 고모는 다소 기력을 회복했고 눈도 어느 장도 초점을 되찾았다. 그리곤 곧이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실종됐던 인지능력이 거의 완전히 돌아왔고, 혼자 힘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토록 싫어하던 기저귀 대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간이변기에 앉아 용변을 보았다.
겨울이 봄에 자리를 내주자 고모는 휠체어를 탄 채 뒤뜰의 나무들에 눈길을 주거나 새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우리는 기나긴 고모의 인생담을 들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고모는 일자리를 찾아 떠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노동시장에 뛰어든 그녀는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금융회사의 중역자리까지 치고 올라갔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일에 매달렸던 고모는 91세에 은퇴했고, 여기저기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 종내는 뉴욕공립도서관 안내원으로 일했다.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고모는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뻗고, 스스로 마사지를 하는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독립보행을 위한 운동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보행기에 의지한 채 혼자 걸었다.
도리스 고모는 하루에 몇 보를 걸었는지 꼼꼼히 체크했고, 차트를 만들어 진전 상황을 확인했다. 애완견이 숙모의 손에 든 아이스크림과 얼굴을 번갈아 핥을 때마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되살아나는 감각에 잔뜩 들뜬 고모는 “라일락 향기를 맡고 싶다”고 했다.
기력회복과 더불어 고모의 지적 호기심도 다시 꽃을 피웠다. 우리와 정치 문제를 논하던 고모는 “인생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집으로 들어와 17개월을 보낸 이후 고모의 인지력은 다시 희미해졌다. 말을 걸어도 그저 멍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고모가 들려준 어린 시절의 일화를 언급하자 그녀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내 아버지, 그러니까 그녀의 남동생이 막 태어났을 때 집안일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고모가 아기를 안고 흔들어주며 달래곤 했다는 얘기였다. 100년쯤 전에 있었던 그 일화를 끄집어 낼 때마다 고모는 “그래, 그랬지”라며 반응을 보였다. 물론 고령과 혼란으로 잔뜩 흐려진 그녀의 기억의 창을 열어줄 화제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고모와 지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도리스 고모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스스로 선택하고, 이야기의 주도권을 유지하며,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자주성에 존경을 표시할 때 유난히 활기를 보였다. 자신이 아직도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그녀의 마지막 시간을 지탱해준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아툴 가완디 박사는 그의 저서 ‘유한존재’에서 우리가 갈구하는 것의 중심에 유의미성(meaningfulness)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건 나이가 들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멜라니 몰러스도 “선택과 자기결정권의 결핍은 급격한 노쇠, 사회적 고립, 우울증 등으로 이어진다”고 밝힌 바 있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빼앗겼을 때 약화된다.
나와 에이미는 고모가 곧 세상을 등질 것이라 생각했고, 생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한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 싶어 집으로 모셨다. 그러나 그것이 106세 고령인 숙모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우리가 준 선물에 감사했다. 그러나 삶과, 사랑, 나이가 든다는 것, 유의미성과 상호연결의 힘을 배웠기에 선물은 우리가 받은 셈이다.

글쓴이인 배리 아이젠버그 박사는 SUNY 엠파이어스테이트 칼리지 대학원의 의료관리학 부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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