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2017] 교실에서 ‘정철의 시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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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태프트고등학교 영어 수업에서 학생들이 시조에 대해 배우고 있다.

본보 기자 태프트고등학교 시조 수업 참관기 

 

파란 눈의 타인종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한국의 고유한 정형시인 ‘시조’를 읊조린다.(?) 매우 생소하고 신기할 것 같지만, 실제 시카고지역 공립학교 중에는 영어 교과과정중의 하나로 시조를 가르치는 곳이 꽤 있다. 4년전부터 시조를 가르치고 있는 시카고시내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고등학교도 그중의 하나다. 다음은 본보 기자의 시조 수업 참관기다.<편집자 주>

 

■타인종 영어교사가 가르치는 시조

지난 6일 아침, 브린마길에 위치한 태프트고등학교를 찾았다. 7~12학년까지 3천여명의 학생들이 재학하는 중·고교 과정 공립학교인 태프트고는 지난 2013년 9월부터 한국어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영어작문(English 101)의 한 부분으로 한국의 고유한 정형시인 ‘시조’를 가르치고 있다. 기자는 12학년 학생들이 English 101 수업에서 이날부터 1주일동안 시조를 배운다는 정보를 접하고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과연 어떻게 시조를 가르칠까하는 궁금증으로 이날 참관하게 됐다. 시조 수업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학교 건물 안에는 수업을 듣기 위한 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1층 로비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교실번호, 교사 이름, 날짜, 시간 등이 자세히 적힌 방문자 스티커를 받아들고 교실로 이동했다.

교실번호 250. 교실에는 4년전부터 이 학교에서 시조를 가르쳤다는 애스보스 마리아 영어교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아 교사는 “‘English 101’ 영어과목 수업으로 시카고시립대학에서 학점이 인정되는 DCP(Dual Credit Program)이다. 예전에는 영어 수업에서 주로 햄릿, 일리아드 등 고전문학을 가르쳤지만 근래에는 한국의 정형시인 시조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주는 시조를 주제로 수업한다”고 전했다.

이날은 특별히 한인 2세 교사이자 4년전 한국어반이 개설됐을 때 강의를 맡았던 루시 루나 영어교사가 함께 참석해 마리아 교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 2008년부터 세종작문경연대회를 통해 미국 학생들에게 시조 짓기를 권장하고 있는 세종문화회의 김호범 이사장도 수업을 참관했다. 수업 시간이 다가오자 학생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강의실에서 시조를 배우고자 하는 33명의 학생들이 교실을 꽉 채웠다. 루시 교사는 시조란 무엇인지, 어떤 형식을 가지고 있는지, 일본의 하이쿠(Haiku), 중국의 Jueju(주에주)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진지하게 경청했다.

■정철의 시조를 읊조리는 학생들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시조를 영어로 읽어보고 시조가 어떤 것인지 직접 느껴보는 시간도 진행됐다. 마리아 교사는 정철의 ‘물 아래 그림자 지니’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조 중 하나다. 스님의 여정이 자연과 어우러져 멋스럽게 담겨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누군가 중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흰 구름을 가리키며 제 갈 길을 갔다는 점에서 첫째, 둘째 장과 달리 세 번째 장에서 장면이 전환되고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흥미로웠다”고 답했다. 루나 교사는 “시조창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형식으로 구성된 시조를 가사로 이를 장단에 맞춰 부르는 노래다. 시조를 바탕으로 해서 가사를 그대로 쓰기도 하고 변주되어 쓰이기도 한다. 장구 반주에 맞춰 부르기도 한다”고 설명했고, 시조창 공연 영상을 학생들과 함께 시청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동영상에서 한 여성이 고운 한복을 입고 구성진 목소리로 불리는 시조창을 흥미롭게 감상했으며 ‘하얀 얼굴에 한복을 입고 특이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무섭기도 하다’, ‘목소리가 독특하다’는 등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수업 중 학생들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시조 수업을 듣는 니콜 도나웰양의 생일을 맞아 다른 학생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한국어로 불러준 것. 다들 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유튜브로 영상을 보고 연습을 하기도 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날 수업을 지켜본 김호범 이사장은 “고등학생들이 시조 수업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 또한 시조를 가르치기를 원하는 교사가 스스로 공부해서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전했다.

■음절 맞추는게 어렵지만 형식이 매력적’

이날 수업을 들은 아산 익발(18)군은 “오늘 수업을 통해 시조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규칙과 구조가 멋지다. 수업에서 앞으로 시조를 쓰게 된다면 내 인생에 대해 쓰고 싶다. 내가 가진 책임감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사실 시조는 엄격한 형식이 정해져 있어서 어렵지만 노력하면 멋진 시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시조를 통해 앞으로 한국의 다양한 문학, 음악, 문화 등을 더 알고 싶다”고 말했다. 케일리 도빈슨(17)양은 “지난 3년간 한국어 수업을 들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키워왔다. ‘토끼’라는 한국 이름도 가지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의 시 형태인 시조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수업을 듣게 됐다. 음절을 맞추는 것이 어렵지만 그것이 시조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목표는 시조를 한국어로 쓰는 것”이라고 전했다.

커스틴 크로우 언어학과장은 “태프트고교는 2013년부터 한국어와 시조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세종문화회의 도움으로 다양한 수업자료 등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운영이 잘 되고 있어서 감사하다. 우리 학교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한국어, 스패니시, 프랑스어, 폴란드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 수업도 개설돼 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소개하고 그들이 가진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문화회의 시조 보급 노력

이처럼 공립학교에서 시조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세종문화회의 부단한 노력이 깔려 있다. 세종문화회는 한국의 고유한 정형시로 민족의 주체성이 담긴 시조를 주류사회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다. 지난 2008년부터 작문경연대회를 열어 시조쓰기를 권장하고 있고, 2010년부터는 미전역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시조 워크샵을 개최했고, 올해부터는 시조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으로 연주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작문경연대회의 시조부문은 2008년 첫해 143편이 접수됐으나 이후에는 매년 미전역과 캐나다 등에서 1천편이 넘게 접수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세종문화회의 웹사이트에서는 시조를 쓰는 방법, 역사, 분석, 영어로 번역된 시조 등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시조를 알게 된 교사들이 수업에 활용하게 됐으며, 시조를 배우고 쓰는 학생들이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미국내 각급 학교에서 시조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신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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