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2015] “친할머니를 꼭 찾고 싶습니다!”

2415

한-영 통역·번역가로 활동하는 흑인혼혈 로버트 홀로웨이

심철수1

로버트 홀로웨이.

한국계 흑인혼혈 미국인인 로버트 홀로웨이(한국명 심철수/27세)의 가계는 다소 복잡하다. 어머니 캐시 홀로웨이(한국명 심은주)도 흑인 아버지와 한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흑인 혼혈인으로 1살 때 미국에 입양됐다. 입양가정에서 자란 캐시는 흑인남성과 결혼했고 그와의 사이에 로버트와 누나(Menzebah Hasati)를 낳았다. 로버트는 흑인여성인 키미라와 결혼해 현재 7개월된 딸 자마라를 키우고 있다. 즉, 할머니는 한인, 할아버지는 흑인, 어머니는 한-흑 혼혈, 아버지는 흑인, 자신은 흑인의 혈통이 더 짙은 한국계 혼혈, 딸은 한인 혈통이 조금은 있는 거의 흑인…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로버트가 엄마의 영향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으며 그래서 한국어를 진짜 한국인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해 직업도 한-영 동시통역 및 번역가일 뿐 아니라 불타사 한국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로 자원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 보기드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친엄마(로버트에게는 할머니)를 찾기위해 무척 노력해온 엄마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지금도 사방팔방으로 열심히 수소문하고 있는 효자이기도 하다. 로버트는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기다려주세요. 많이 보고 싶어요. 엄마와 만나면 제가 통역해 드릴께요”라는 메시지를 할머니를 찾아 꼭 전하고 싶단다.

■ 엄마의 모국어가 궁금했어요

로버트와는 달리 엄마인 심은주씨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던 심씨는 자녀에게 ‘나는 한국사람이니 너희도 한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 사용하기, 김치 먹기 등을 적극 권유하면서 한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이런 엄마의 영향 탓인지 로버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엄마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할머니가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이 그의 마음속에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자리잡았다.

 

로버트는 시애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시애틀에 한인들이 비교적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한국문화를 접하거나,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로버트의 한국어에 대한 열망은 결국 고교졸업후 미국에서 한국어학과 규모가 가장 큰 곳 중 하나인 하와이대학 한국어학과에 진학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언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원어민 나라에 직접 가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에 대학을 휴학한 후 2009년 한국에 어학연수를 갔다. 한국에서 9개월간 절대 영어를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열심히 배웠다. 한국에 직접 살아보니 한국사람,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이 더 좋아졌고 할머니를 찾고 싶다는 마음도 갈수록 커져만 갔다.

 

family1
2008년 여름 할머니를 찾고자 한국을 방문한 홀로웨이씨 가족.(왼쪽부터 누나 Menzebah Hasati, 로버트, 엄마 심은주씨)

 

■ 할머니를 꼭 찾고 싶어요

로버트는 한국에서 어학연수기간을 마친 후 2010년에 아프리카 문화와 철학을 가르쳐주는 ‘디 어스센터’(theearthcenter.org)에서 봉사하고 싶어 시카고로 오게 됐다. 어스센터는 전세계 모든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보호하며 선조문화에 대해 교육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봉사하면서 배운 가치관들이 정체성을 이해하고 한국문화를 좀더 깊이 아는데 큰 도움이 됐다. 로버트는 전통문화와 선조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자녀된 도리이자 후손의 충효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할머니(심희선, 1934년생)를 더욱 찾고 싶단다. 또한 엄마인 심은주씨 수십년간 찾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은주씨는 10여년 전에 KBS방송 ‘사람을 찾습니다’에 출연도 했고, 시애틀 한국일보사를 방문해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심씨의 입양을 도왔던 대한양연회(현 대한사회복지회)와 연락이 닿아 당시 자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서류에서 할머니가 거주했었다는 주소(의정부시 의정부 2리)를 발견했다.

로버트의 할머니는 중학생시절 북한군에 의해 부모를 잃고 여동생과의 생계를 위해 생업에 나서야 했다. 의정부 소재 주한미군부대에서 일을 하면서 흑인 미군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쾌활한 분이었는데 할머니가 아이(로버트 엄마)를 갖게 돼 결혼하기로 됐다. 그러나 결혼준비를 하던 중 불운의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뜨셨다. 할머니는 홀로 아이를 양육하기엔 너무 힘든 환경이었기에 대한양연회를 통해 입양을 보내게 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로버트 어머니의 한국 이름은 ‘심은주’가 맞지만 입양기관에 고아로 등록되면서 당시 대한양연회 총장의 성(姓)을 따오는 관례에 따라 ‘탁은주’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1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로버트의 가족은 2008년 여름 한국을 방문해 할머니가 살았던 의정부를 찾아 시청, 경찰서 민원실 등을 두루 다녔고, 인근의 복지센터도 방문해 할머니의 소식을 수소문했으나 별다른 성과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주어 깊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다. 보고 싶은 할머니를 찾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를 찾으면 한국어를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통역해 줄 것이다.

■ 한국어 공부는 여전히 계속

한국어 배움을 늦추지 않기 위해 2010년부터 한울종합복지관에서 3년 정도 한국어로 컴퓨터, 영어, 시민권, 금융수업 강사로 봉사했던 로버트는 그 당시 수강생이었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해져 친할머니 이야기를 나눴는데 항상 격려해주고 응원해줬다. 한울에서는 비서 업무를 하면서 통역, 번역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한 것이 큰 도움이 돼 현재는 프리랜서 한국어-영어 동시통역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수준까지 됐다. 1년전부터는 불타사한국학교 교사모집을 접하고 한인 2~3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됐다. 한국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아이들이 한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를 심어주고, 한국어가 얼마나 재미있는 언어인지 아이들의 흥미를 높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다.

로버트는 의료통역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트레이닝을 거쳐 수료증을 받고 정식으로 의료관련 통역서비스도 시작하게 됐다. 프리랜서로 한-영 의료, 법정관련 통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통역은 여러 자질이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정직함과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통역은 혼자서 하는 일이기에 신중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며 애매모호할 때 아는 척하면 절대 안되는 정직함과 맡은 케이스가 어려운 여건 속에 있더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완수해야 하는 책임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인이지만 모르는 영어가 있듯이 통역번역을 위해서 정말 공부를 성실하게 해야 하고 넓고 깊게 해야 한다. 나중에 준비가 됐을 때 미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한국어중심 통역회사를 세우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로버트는 혹시 할머니를 찾는데 도움을 주실 수 있는 한인이 있으면 꼭 연락해주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의 연락처는 전화: 312-609-9922, 이메일: robertholloway444@gmail.com이다.<홍다은 기자>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