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2015] 북한체제 ‘민낯’ 드러낸 러시아 다큐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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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소녀 생활상 촬영…북 당국, 출연자 가족·집 모두 ‘설정’

 

NK
북한 생활상 담은 러시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의 한 장면.<영화 트레일러 캡처>

 

러시아 감독이 북한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거짓 현실’로 체제를 선전하려는 북한 당국의 민낯을 생생히 드러내면서 북한이 상영중단을 요구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30일 영국의 더타임스와 가디언 등의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영화는 내년 미국과 독일 등에서 개봉될 예정인 러시아 다큐 영화 ‘태양 아래'(Under the Sun)다. 러시아 출신의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 비탈리 만스키가 만든 이 다큐영화는 ‘진미’라는 이름의 8살 북한 소녀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김정일 생일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과정 등 평양 주민의 생활상을 그려냈다.

다큐멘터리 영화 안에서 ‘진미’는 봉제공장 직원인 아버지와 유제품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 아래 평양의 널찍하고 안락한 아파트에서 사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배경은 사실 북한 당국이 만들어 놓은 ‘가짜 현실’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검은 코트를 입은 ‘경호원’들이 주인공 등 등장인물들에게 적절한 대사와 반응을 하나하나 지시하는 모습이 함께 찍혀 있기 때문이다. 만스키 감독은 촬영 전후로 카메라를 끄지 않고 두는 방법으로 북한 당국이 보낸 이들 경호원이 영화에 개입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두 차례 평양 방문을 통해 영화를 만든 만스키 감독은 촬영한 장면을 매일 북한 당국에 검열받아야 했지만, 민감한 장면들을 따로 복사해 두거나 당국에 넘기기 전에 따로 편집해 놓는 방법으로 검열을 피해갔다.

만스키 감독이 처음부터 이런 ‘폭로 영화’를 찍으려던 것은 아니다. 그는 북한 소녀 5명을 10분가량씩 인터뷰한 뒤 아버지가 기자이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작은 아파트에 산다고 답했던 ‘진미’를 주인공으로 낙점했으나 촬영을 진행하면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했다. 진미의 집에 가보니 부모의 직업이 공장 직원으로 바뀌어 있었고 집도 훨씬 고급이었다. 만스키 감독은 아무도 없을 때 몰래 열어본 부엌 찬장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인공의 달라진 배경이 북한 당국의 ‘설정’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모든 게 정말 이상했다. 경호원들은 내가 그 집을 진짜라고 믿을 만큼 바보로 생각한 것 같다”면서 “촬영하면서 이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식적인 이야기와 그 배후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 방식을 함께 보여주게 됐다”고 설명했다.

‘태양 아래’는 지난달 에스토니아 탈린 블랙나이츠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면서 러시아와 북한 양국 정부로부터 반발을 샀다. 북한은 이 영화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에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고, 러시아는 영화제 측에 ‘태양 아래’의 상영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만스키 감독은 그러나 “이 영화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교훈과 경고를 던져주고 있어 러시아에서도 꼭 상영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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