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시간 숨소리 통화···아빠는 하늘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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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돈 어데어(왼쪽 두 번째부터)가 애비 어데어 등 자녀들과 함께 한 단란했던 모습.[애비 어데어 제공/CNN 캡처]

코로나 투병 부친과 애닯은 마지막 전화
뉴욕의 가족 이야기 미국인들 가슴 울려

“아빠, 우리 모두 듣고 있어요. 숨 쉬세요. 아빠가 숨쉬는 소리 들어야 해요”

숨이 멎은 듯 정적만 흘렀던 10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마침내 아버지의 얕은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전화기 너머 눈물만 삼키던 딸은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렇게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며 잠을 청했지만 그녀는 아이폰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아버지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36시간 동안 통화한 어데어 가족의 애절한 사연이 지난 21일 CNN과 USA투데이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뉴욕 로체스터에 사는 애비 어데어 라인하트(41)가 코로나에 걸린 아버지 돈 어데어(76·은퇴 변호사)와 통화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일이었다. 겨우 5마일 떨어진 하이랜드 병원, 철저히 격리돼 가족의 면회도 허용되지 않는 병상에 홀로 누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아버지의 숨소리라도 들어야 했다.

돈 어데어는 지난 4일 집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고열과 기침 증상,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었다. 평생 한번도 아프지 않았던 강철체력의 아버지였기에 그냥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의사로부터 증상이 심하지 않고 예후가 좋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별 걱정없이 종려주일을 보내는 중 간호원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급작스럽게 악화되어 “폐렴이 왔고 정신이 혼미하다. 고통도 심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것 같다”는 말 뒤로 간호사가 아버지의 귀에 전화기를 갖다 댔지만 돈 어데어는 듣기만 할 뿐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위중한 상태를 전해들은 그녀는 결정해야 했다. 아버지의 유언장을 꺼내들어 읽고 또 읽으면서 기도했고 아버지의 응답을 들었다. “인공호흡기, 투석, 심폐소생술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화장실에서 숨죽여 오열하던 애비는 “아빠 사랑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라는 말로 서른 시간이 훨씬 넘는 긴 통화를 시작했다. 간호사가 베개에 놓아준 전화기 사이로 들이쉬고 내쉬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백색소음처럼 일정하게 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거칠고 가래가 낀 듯한 숨소리로 바뀌었고 애비는 다른 가족들,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탐과 캐리, 덴마크에 사는 에밀리에게 컨퍼런스 콜을 했다. 전화기 앞에 모인 네 남매는 모두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부르고 어린 시절 추억 보따리를 풀어냈다.

하루 그리고 반나절 동안 그들의 통화는 이어졌고 아버지의 숨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면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몇 초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순간은 없었다. “숨 쉬세요, 아빠. 우리는 아빠가 숨쉬는 소리라도 듣고 싶어요”

10분 만에 돌아온 아버지의 숨소리에 잠시나마 안도한 그녀는 모두에게 휴식을 취하자고 제안했다. “굿 나잇, 돈” 저녁 인사와 함께 모두 잠자리에 들었지만 누구하나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리고 자정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났음을 직감했다.

그제서야 36시간에 걸친 통화에 종료 버튼을 누른 그녀는 “내가 느낀 공포는 이제껏 경험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빠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조차 어려웠다”고 했다.<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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