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문화산책] 트로이 목마(木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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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호머(Homer)의 대서사시 ‘일리아드(Iliad)’는 Troy의 노왕(老王) Priam이 아들 Hector의 시체를 Achilles로부터 넘겨받아 장사지내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가장 평범한 사실은 ‘일리아드’의 대전제이기도하였다. ‘하데스’(Hades)는 지하 황천에 있는 저승의 세계로 땅 위에서 살다가 죽은 후에는 누구나 다 가서 머물기를 원하던 곳이었다. 트로이 벌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영웅들도 자기들의 주검이 들개나 날짐승의 먹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모두 그곳에 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죽은 자가 스스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반드시 누군가 장례를 치러 주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헥토르를 화장한 후 봉분(封墳)을 쌓아 장례를 치렀다는 ‘일리아드’의 마지막 장면은 트로이 주민들이 사자(死者)에 대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과 경의(敬意)를 보여 주고 있다.

호머의 ‘일리아드’가 10년간의 트로이 전쟁 중 마지막 50일간에 벌어지는 참혹한 결전이야기가 그 주제인 반면에, 속편이랄 수 있는 ‘오디세이’(Odyssey)는 트로이 전쟁 후 희랍 이타카 섬의 군주 오디세우스가 해신(海神) Poseidon의 방해로 난파를 당하여 10년간에 걸친 해상표류의 온갖 모험과 귀향하여 그 동안 그의 궁전에서 재산을 축내면서 방약무인하게 행동하며 왕비 Penelope에게 짓궂게 구혼하던 청혼자들을 거지 행색으로 잠입하여 한꺼번에 사살하고 20년 만에 그리던 아내 Penelope의 침실로 드는 해피 엔드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총 24장, 12,110행의 서사시로 구성되어있다.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의 원본에는 우리가 영화장면에서 보듯 트로이의 왕자 Paris가 형 헥토르를 무참히 살해한 Achilles의 발꿈치를 활로 쏴 복수를 한다거나, 거대한 목마(Trojan Horse)를 만들어 그 속에 정예 복병을 숨겨놓고 철수한 희랍군의 위장 전술에 속아 승전 축제에 취해 트로이 시민들이 잠든 사이에 성문을 부수고 트로이 성을 함락한다는 극적인 서술은 없다. 단지 ‘오디세이’ 8장에 눈먼 음유시인 Demodocus에 의해 목마에 대한 언급이 몇 마디 나오자 오디세우스가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짓는 장면만이 잠시 나올 뿐이다. 그러니까 헬렌을 되찾기 위해 6만 명의 희랍 연합군이 동원됐다거나, ‘트로이 목마’는 역사적인 사실과는 상관없는 문학적 허구인 상상력의 소산이다. 후대에 와서  ‘트로이 목마’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의 ‘이니이드’(Aeneid)에서 좀더 극적으로 화려하게 서술된다. 트로이는 당시에 경제적, 지정학적인 요충지로서, 에게 해를 타고서 세력을 확장하려던 희랍 미케네(Mycenae) 문명과 결국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견고한 트로이 성이 무너진 것은 ‘트로이 목마’가 아니라 그 지역을 위협하던 지진에 의한 붕괴로 본다. 희랍 신화에서 지진을 주관하는 해신 포세이돈은 또한 말(馬)을 창조했기 때문에 경마의 수호신으로도 섬겨지고 있는데, 청동기 시대에 트로이가 특히 말 교역으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결국 목마(木馬)로 망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하고도 흥미 있는 일이다.

(註: 트로이는 드로아(Troa)로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시 안디옥을 거쳐 방문했던 항구로 나와 있고(행 16:8), 실제로 Heinrich Schliemann이 1873년 트로이 전쟁 유적지를 발굴했다. 나는 1991년 8월 터어키 관광 중 트로이 현지를 가 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