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문화산책] 차귀자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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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 문학평론가(시카고)

 

내가 차 권사를 처음 알 게 된 것은 지난 번 동구라파 여행을 함께 하면서였다. 미주에 사는 30여명의 동포 관광객들이 2주간에 걸쳐 단체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옛 공산권에 속했던 동유럽 4개국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는데, 주관하는 여행사가 뉴욕에 있기 때문인지 한국에서 온 삼십대 후반의 젊은 의사 부부를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뉴욕 근교에 사는 한인들로서 50대 중반에서 60대 후반에 걸친 연령층으로 서로 구면인 듯싶었고, 오직 나 혼자만이 시카고에서 온 외톨박이임을 알게 되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의 불교 신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기독교 신자이거나 예전에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었는데, 특히 60대 후반의 나이 든 여자들은 교회 권사님들이 많은 듯싶었다.

나로서 처음에는 좀 서먹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하루 이틀 함께 지내다보니 같은 연배의 일행들과 이내 친해지게 되었고, 런던에서 비행기로 오슬로에 도착해서부터는 전 여정을 거의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는데 어쩌다 마이크를 잡고서 앞좌석에서 사회 겸 우스개 잡담으로 내가 계속 떠들게 되다보니 어느 새 단체 동행들과는 누구와도 허물없이 농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가만히 살펴보자니 뉴욕 한인들은 모두 이민 ‘올드 타이머’들이기는 하지만 시카고 한인들에 비해 씀씀이도 크고, 한국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풍겨주고 있었다. 환갑 나이에 아직도 브랜드 네임 옷가지나 모자, 가방들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관광 가이드에게 주는 팁도 하루에 10불씩 계산해서 이미 치렀으면 그만인데도, 헤어질 때 다시 별도로 돈을 추렴해서 주는 모양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일년에 한 차례 해외 여행을 다닐 목적으로 ‘진달래’란 이름의 계를 하고 있는 회원들이었는데, 10년 넘게 하다보니 지구촌 웬만한 곳은 이미 다 다녀 본 것 같았다.

일행 중에는 환갑 나이도 지난 세 자매가 있었는데 특히 둘째인 차 권사라는 분에게서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진 한 농담도 잘 하는 매우 유쾌한 성격의 모매(母妹) 님이었는데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멀미하는 다른 승객들을 위해 언제나 자신은 버스 맨 뒷좌석을 고집했다. 여행 도중에  삶은 달걀이나 과일, 빵 등을 어느 새 여분으로 비축해 두었다가는 나중에 찻간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를 즐겨했으며, 누군가 룸메이트가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 잠을 못 잤다고 불평하자, 자기는 코를 고는 사람과 한 방에서 지내도 상관없다며 자진해서 방을 바꿀 정도로 남에 대한 배려가 극진했다. 운전기사나 유학생인 현지 가이드들에게는 헤어질 때 조용히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손에 팁을 쥐어주는 장면을 나는 우연히 목격하기도 했다. 전혀 완고하고 엄격한 교회 권사 님 같은 인상을 풍기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를 은근히 짙게 풍겨주고 있는 그녀는 실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명을 주었다. 그녀로 인해 새삼 이기주의적인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해 볼 기회를 모처럼 여행 중에 갖게 되었다는 것은 또한 나에겐 귀중한 생활경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