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학산책] 디누 리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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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일전에 모국 일간지 문화면에서 우연히 흥미 있는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다. 피아니스트 김진호(47)씨가 33세로 요절한 루마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Dinu Lipatti(1917-1950)가 1950년 9월 16일 프랑스 ‘브장송 국제음악제’에서 행한 마지막 독주회와 똑 같은 레퍼토리를 갖고 독주회를 연다는데, 1995년부터 매 5년마다 같은 추모 연주회를 가져 금번 세 번째가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줄리어드 음대 출신으로 연주만으론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요즘 세상에 남들이 다 하는 피아노 레슨이나 대학교수 자리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집에 틀어박혀 피아노 연습만 하는 보기 드문 고집불통 괴짜 전업 연주자라고 한다. 그는 55년 전 리파티가 연주했던 순서대로 바흐의 파르티타 B Flat 1번으로 시작해서 모차르트 소나타 A Minor K310,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 3번과 2번, 쇼팽의 14개의 왈츠에 이어 바흐의 ‘Jesu, Joy of Man’s Desiring’으로 마무리한다.

리파티는 바이올리니스트인 부친과 모친이 피아니스트인 음악가정에서 태어나 17세 때인 1934년 ‘비엔나 국제피아노경연대회’에서 2등에 입상했는데, 당시 리파티의 우승을 주장하였던 Alfred Cortot 는 심사결과에 항의하여 심사위원직을 사임했을 정도였다니까 능히 그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리파티는 1943년 Geneva Conservatory 교수직을 얻게 되었지만 이 무렵부터 백혈병 증세가 시작되었다. 아직 암 치료 화학요법인 Chemotherapy가 없던 시절이라 오직 Hydrocortisone 주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치료제로 간주되어 비용이 엄청나게 비쌌다고 한다. 결국 2차 세계대전 이후 불과 5년 정도의 극히 제한적인 연주생활 후 삶을 마감했는데, 그는 극단적인 완벽주의자로서 특히 쇼팽과 모차르트에 대한 그의 섬세한 리듬과 타이밍의 감각과 해석은 정평이 나있다. Yehudi Menuhin의 말대로 그는 음악을 통하여 “모든 아픔과 고통을 극복한 정신적 영역의 구현” 자로서 현대적 감각과 청신한 리리시즘을 지닌 천재 피아니스트였다.

생애 마지막 독주회를 가졌던 Besancon은, 또한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장발장/1862)’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1885)의 탄생지로서, 오늘날에도 연례적인 다양한 문화축제가 계속 열리는 역사 깊은 문화 도시로, 리파티는 주치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코티손 주사를 미리 맞고 무대에 나가 혼신의 힘을 다 해 즉흥성이 강조된 생동감 넘치는 완벽한 연주를 했지만, 결국 극심한 피로로 쇠잔(衰殘) 하여 쇼팽 의 마지막 왈츠 2번은 끝내지를 못하고 평소 자신이 안식의 기도로 즐겨 치던 바흐의 ‘예수는 영원한 나의 기쁨’으로 대신했는데, 그날 청중들은 흐느낌과 진한 감동의 눈물을 모두 감추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의 실황 고별 연주 CD 음반을 다시 감명 깊게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