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돌마바흐체 궁전

122

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이스탄불 부두에서 관광유람선을 타고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북상을 좀 하다보면 첫 번째 대교(大橋)를 지나기 전에 이스탄불 아시아 지역인 오른쪽으론 50년대 한국 전쟁 때 “위스키달라” 라는 터키 민요풍 유행가로 널리 알려졌던 위스크다르(Uskudar)라는 상가 마을이 보이고, 바로 건너편 유럽 지역인 신시가 왼쪽엔 웅장한 흰 대리석 석조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건물이 바로 유명한 돌마바흐체(Dolmabahce) 궁전이다.

입장료 10불에 휴대한 카메라 사용료 7불을 별도로 지불하자니 바가지 쓰는 기분도 들기는 하지만 터키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가봐야 될 명소로써, 그냥 지나쳐버린다면 마치 파리에 가서 베르사유 궁전을 보지 않고 가는 격이나 다름이 없다 하겠다. ‘돌마바흐체’란 “filled garden”이란 뜻인데, 바닷물을 메꾸어 터를 닦았다는 뜻도 있고, 그 곳을 정원으로 가득 채웠다는 의미도 된다고 한다. 이 곳은 또한 희랍 신화에서 Jason이 황금 양털(Golden Fleece)을 찾아오기 위해 원정에 나섰던 유명한 Argonaut 일행들이 처음 닻을 내린 장소이기도 하다. 여하튼 건축을 시작한지 13년 만인 1856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그 비용 때문에 오스만제국이 흔들렸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로 화려한데 43개의 홀과 285개의 방을 갖고 있고, 실내 장식에만 무려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56개의 기둥으로 세워진, 돔 높이가 36 미터나 되는 그랜드 홀 중앙에 매달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기증했다는 호화찬란한 샹들리에의 무게는 4.5톤이며 750개나 되는 촛대램프가 켜져 있다. 궁내 이층 복도창문에서 내다보이는 바로 눈앞에 넘실거리는 쪽빛 보스포러스 해협의 바다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스만제국의 마지막 비운의 황태자 ‘오르한’(Orhan)의 서글픈 환영이 궁내 구석구석에 어려 있는 듯싶어 나로서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세계 1차 대전의 패전과 더불어 오스만제국이 스러지고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거센 물결의 와중에서 마지막 술탄의 왕자였던 그는 15세 때 궁전 뜰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다 갑작스런 국외 추방 명령으로 하루아침에 황태자의 신분에서 빈털터리 추방 객의 신세로 비참하게 전락한다. 이집트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근근이 살아오다가 그나마 신분이 노출되어 프랑스로 건너가 숨어살며 막노동 일로 연명하다 추방 당한지 68년 만에 83세의 노령으로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밟게 되어 그의 평생의 소원대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주어진 5일 동안을 머무르면서 눈물을 흘리며 궁전 곳곳을 손으로 쓰다듬고 다녔다고 한다. 국민들의 호의적인 여론과 탄원으로 오르한은 여생을 터키에서 보낼 수도 있었으나 세금을 한 푼도 낸 적이 없는 자신은 조국에 살 자격이 없다면서 파리로 되돌아 간지 일 년 후에 한 빈민촌 아파트 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독신으로 지냈는데 패망한 제국의 후계자로서 자식을 남겨 자신처럼 고생하며 숨어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또한 국부(國父)로 추앙 받는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Mustafa Kemal이 서거한 장소이기도한데 그 역시 독신으로 자손을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