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부활절(復活節)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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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어내는—”

우리는 T. S. Eliot의 ‘황무지‘(The Waste Land, 1922) 싯귀를 읊조리며 광화문 거리를 헤매이던 1960년의 4월의 한국을 기억한다. 당시의 젊은이들에게는 4월은 암울한 회색빛이 감도는 황무지와도 같은 황량한 계절이었으며 동시에 찬란한 미래의 서광이 비치는 듯 싶은 새로운 날의 기약이기도하였다.

민중을 억압하는 정치적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하여 맨 주먹으로 과감히 일어났던 4.19 혁명은, 말하자면 어린 다윗이 팔매 돌로 골리앗을 때려잡는, 하나님의 손길이 인류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기적의 순간이었으며, “죽고 하나를 건져낸”(死一求)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압제에 시달려 이제껏 숨을 죽이고 살던 풀잎(Grassroots)들이 비로소 숨구멍을 트고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부활의 순간이기도 하였다.

예수를 따르던 갈릴리의 몇몇 고기잡이 젊은이들에게도 4월은 역시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교리적으로 억압하는 바리새적인 외식과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예루살렘 사두개 집권층의 현실주의, 그리고 로마인들의 정치적 횡포로부터 이스라엘민족을 홀연히 구원할 메시야로서의 큰 기대감을 가지고 생업도 포기한 채 여지껏 신뢰하며 따르던 스승 예수가 저 예루살렘 입성의 열광적인 흥분과 호산나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것도 바로 자기들의 핵심 동지 중의 하나였던 가룟 사람 유다의 밀고로 야밤중에 체포되어 십자가에 즉결 처형을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갈릴리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에게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충격이요 좌절이었다. 그네들의 조국을 위한 무지개 빛 꿈은 예수의 비극적인 죽음과 더불어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뿔뿔이 흩어져 엠마오로 터벅터벅 낙향하는 실의에 찬 , 갈릴리 인들의 좌절의 뒷모습을 복음서의 기자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수의 부활의 기적이 없었다면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은 끝내 역사의 지평 너머로 종적을 감추어 버렸을 것이며, 실낙원 이후의 인류 역사는 결국 영원한 파멸의 구렁텅이에 함몰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엠마오로 내려가던 발걸음을 돌려 예루살렘을 향하여 허겁지겁 급히 다시 되돌아오는 갈릴리 인들의 환희에 찬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다. 수난과 절망의 종착역에 전혀 예기치 않던 부활의 환희와 희망에 찬 새로운 역사의 장이 펼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실의에 차 엠마오로 내려가던 우리의 좌절의 발걸음을 다시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과감히 되돌려야 한다는데 부활의 실존론적 의미가 있다. 수난을 통한 다시 살아남의 기쁨이요, 절망의 몸부림을 통한 소망이요, 의심과 회의를 통한 확신이며, 희생을 통한 구원의 놀라운 섭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 천여 년 전에 한 무리의 갈릴리 인들이 실제 예수의 부활을 통하여 체험했던 그 기쁨과 그 감격을 바로 지금 내 자신의 기쁨과 감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활절 아침을 맞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밤 낮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도 예수가 부활을 통하여 몸소 우리에게 예시(豫示)한 영생(永生)에의 예행연습이 아니겠는가—.

할렐루야, 주 찬양, 예수 다시 사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