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브람스교향곡 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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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CSO)가 1월25일부터 2월7일까지 한국, 타이완, 중국등 아시아 순회공연을 떠나기에 앞서 같은 공연 레퍼토리를 가지고 얼마 전 심포니 홀에서 연주회를 가졌었다. 애초에는 두 번에 걸친 연주회를 모두 참석할 계획을 세웠다가 겨울철 다운타운에 나가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두 번째 공연 티켓만 구입하여 연주를 듣고 왔다.

특히 베토벤을 좋아하는 아시안 시청자들을 감안해서였는지 연주곡 목록은 베토벤 교향곡3번과 피아노협주곡3번, 레오노레 서곡, 그리고 브람스교향곡4번과 스트라빈스키 디벌티멘토였는데 나는 브람스를 연주하는 두 번째 날 공연을 선택했다.

나 역시 베토벤 음악을 대학시절부터 좋아했고 귀에도 익은 곡들이어서 베토벤 연주를 포기한다는 것이 적이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브람스교향악을 듣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내가 브람스 곡을 결정한 것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던 천상병 시인 때문이었다. 주로 라디오 방송으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었기는 하였지만 천상병은 고전음악을 좋아했고, 음악 감상에 대한 지식도 꽤나 있었던 모양인데, 그가 제일 좋아했던 음악이 바로 브람스 교향곡4번이었다. 평소에도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들으면 감격하여 금방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부인인 문순옥이 베토벤도 좋은데 왜 브람스를 그렇게 좋아하느냐 물었더니 베토벤은 곡이 너무 쉽고 브람스는 어려우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하면서, 그는 브람스 다음으로 바하(J.S. Bach)를 좋아했는데, 브람스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이고 바하는 천사의 소리라고 느낌을 말 했다고 한다. 사실 브람스 곡은 음악 감상실을 돌아다니던 나의 대학 시절부터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헝가리 무곡은 자주 듣던 신청곡 중의 하나였으며, 특히 교향곡4번의 3악장 알레그로 지오코소는 가끔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편집되는 귀에도 낯설지 않은 선율이기는 했지만 내게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혹시 이순(耳順)의 나이를 지난 나로서 대학시절과는 달리 브람스교향곡4번을 다시 듣는다면 천상의 음악으로 들릴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도 가지고, 또한 리카르드 무티의 오케스트라 지휘는 가히 예술의 경지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컨덕팅 솜씨도 모처럼 즐길겸해서였는데,  무티는 갑작이 심한 독감으로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가 치료 중이어서 대신  밀워키심포니오케스트라의 뮤직 디렉터인 Edo de Waart가 지휘를 맡았었고, 브람스교향곡이 전반적으로 무겁고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역시 눈물이 날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내 음악 감상 실력이 아직도 어려운 브람스를 이해하고 즐기기에는 역부족인듯 싶다.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4번은, 그가 52세가 되던 1885년에 작곡되었는데 그에게 이 시기는 작곡가로서 명성은 얻었지만 친한 사람들과의 이별, 사별이 계속되어, 고독, 체념, 회환과 우수가 짙게 드리웠던 어두웠던 시기이기도하였다는데, 4번 교향곡이 일명 “가을의 교향곡”이라고 불리워지는 이유도 바로 언딘가 허전한 적막감 같은 늦가을의 애잔한 페이소스가 이 작품 속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람스는 스승벌 되는 슈만의 아내, 자신보다 14살 연상의 클라라 슈만에 깊은 연정을 느끼며 그러나 끝내 우정의 선을 넘지는 않으며 일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클라라가 1896년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 때문인지 브람스도  이듬해 그녀의 뒤를 따라 64세로 생을 마감했다.

아마도 브람스 제4번 교향곡의 무겁게 흐르는 짙은 비애감의 음조가, 베르린 간첩사건 누명으로 심한 전기고문을 4번씩이나 당한 휴유증으로 정신과 육체가 황폐되어 비참한 삶을 살다 결국 브람스와 같은 나이로 이 세상 소풍을 끝낸 천상병의 심금을 울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