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시내산과 보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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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드디어 카이로의 램시스 힐튼 호텔에 여장을 푼 것이 자정을 훨씬 넘은 시간 이었나 본데, 또 다시 새벽 5시 반 까지는 길 떠날 채비를 하고서 일층 로비에 내려와 기다리고 있어야 된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는 피로에 지쳐 짜증이 좀 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내산을 카이로에서 가자면 자동차로 6 시간의 거리요, 비행기로는 2 시간 정도 걸리는  세모꼴 시나이 반도 남쪽 끝 내륙 중간 지점에 있는, 수도원의 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되어버린 ‘세인트 캐더린’(Saint Catherine)엘 가야만 했었다. 이왕이면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이나 헤매었다는 역사적 현장인 시내 광야를 철저하게 봐 두자는 생각에서 자동차로 몸소 사막을 가로질러 가보고 되돌아 올 때는 공중에서 한번 내려다보자는 계획을 짧은 일정 속에 끼워 놓았던 만큼 새벽 6시에 카이로에서 하루에 한번 출발한다는 차편을 나로서는 도저히 놓칠 수가 없는 처지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일명 ‘호랩산’이라고도 기록되어있는 진짜 시내산이 어디에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은 사실 꽤 오랫동안 논란되어 온 문제 꺼리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시내산일 거라고 여겨지는 곳이 이곳 ‘세인트 캐더린’말고도 두어 곳 더 있는데, 우선 시나이 반도 동북쪽에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내 생각에는 모세가 출애굽 하던 때의 ‘바로’왕으로 추정되는 램시스 2세의 군용 도로가 히타이트 족을 진압하기 위하여 지중해 연안을 끼고서 시리아 쪽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 군대의 추격을 피해야 될 입장이었던 모세가 그 근처에서 어정거리고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했다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바로 화산(volcano)이었을 것이고, 시내산 기슭에서 전 이스라엘 민족이 산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연기가 자욱한 불길 속에서 야훼를 접견하는 출애굽기 19장의 전율적인 체험이 다름 아닌 지진 현상일 것이라는 판단 아래 시내산의 위치를 아커바(Aqabah) 만 건너편 쪽으로 돌려(시나이 반도는 화산 활동이 전혀 없었다.) 당시 활화산 지대였던 아라비아 반도의 동북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구름이나 불기둥을 단순히 화산의 현상으로 넘겨짚기에는 아무래도 무리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고 보면 시내산의 추정지로 가장 유력시 되는 곳은 역시 세인트 캐더린이 있는, 근처에서 ‘모세의 산’(JEBEL MUSA)으로 구전되어온 7500 피이트의 검붉은 화강암 민둥산임을 수긍치 않을 수 없게 되며, 이미 A.D. 342년에 왕후 헬레나에 의하여 십계명을 받은 모세의 산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산기슭에 수도원이 세워진 것이 희랍 정교회 수도원으로서는  일대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세인트 캐더린인 것이다. 실제로 수도원 안에는 모세가 불붙은 가시떨기 속에서 야훼를 만났다는 ‘버닝 부쉬’와 그가 마셨다는 우물이 있기는 하지만 으례 성지 순례 관광지가 모두 그러하듯이 관광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나중에 생겨난 것이리라.

어느 새 약속 시간인 새벽 2시가 되어 있었다. 베두인의 안내로 시내산 꼭대기를 올라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산 위에서 새벽 5시에 해돋이를 맞기 위해서는 호텔에서 3 시간 전에 떠나야만 했었기 때문이었다. 칠 흙같이 어두운 산중의 밤길을 희미한 손전등 불빛 하나로 잽싸게 걸아가는 베두인 안내자의 뒤를 따라 울퉁불퉁한 산길을 잠 설친 몸으로 기어오르자니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았을 성 싶은데 숨이 턱에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침 이러한 내 사정을 알아채기나 한 듯이 컴컴한 산중의 길섶에서 불쑥 낙타를 타고서 올라가지 않겠냐고 흥정을 붙이는  베두인이 있었다. 시내산에 올라가는 길목마다 이집트 정부의 묵인 하에 베두인  족들이 낙타를 태워주거나 간단한 음료를 파는 상행위를 독점하고 있었다.

시내산 정상에서 어슴푸레한 광야의 동녘 지평으로부터 붉게 솟아오르는  장엄한 일출의 광경을 인상 깊게 지켜보고 나서 내려오는 길에 보려니까 여기 저기 바위 틈새로 토끼 꼬리처럼 흰 방울꽃이 달린 가시돋힌 이름 모를 떨기 풀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띄었다. 모세가 보았다던 불붙은 떨기나무가 바로 이것이 아니랴 싶어 한 가지 꺾어 갈까 두리번거리던 순간 떨기풀 사이에 걸려 팔랑거리며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번쩍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한글 인쇄 글자도 선명한 울긋불긋한 ‘보글라면’ 포장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