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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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필자(筆者)가 예전에 여행 중 몸소 겪은 으스스한 체험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브론테(Bronte) 자매들이 문학소녀로서의 꿈들을 일찌감치 키우며 고독히 자라났던 히이드(Heath) 무성한 황야(荒野) Haworth는 영국 북동부 Yorkshire 주에 있는 한적하고 조그만 벽지(僻地) 마을로 런던에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런던에서 개최됐던 국제수필문학 세미나에 참석하고 다음 날  혼자서 큰 맘 먹고 자동차를 세내어 외진 이곳을 힘들여 찾아 가 본 날짜가 기록을 보니 1998년 10월 24일이었다. 아침부터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쌀쌀한 전형적인 영국 늦가을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내가 하워드에 도착했던 오후에도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잔뜩 찌푸린 날씨에 음산한 분위기마저 풍겨주고 있었다. 교통도 매우 불편한 외딴 곳이기는 하지마는,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의 작가 Emily Bronte(1818-48)와 그녀 언니인 ‘제인 에어(Jane Eyre)’의 Charlotte Bronte(1816-55)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외국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교회 내 다갈색 벽돌 이층 목사관(Parsonage)은 브론테 박물관으로 되어있었는데, 바로 이 건물에서 브론테 자매들은 불후의 명작 소설작품을 구상 집필했고, 또한 그녀들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부친 Patrick Brote가 이곳 교구 목사로 임명되어 브론테 집안이 하워드로 이사 온 것은 자매들이 아직 두서너 살 밖에 안 되던 1820년이었다. 이사 온지 2년이 채 안되어 38살의 나이로 모친이 폐병으로 돌아가자 이모가 죽을 때까지 함께 목사관에 기거하면서 자식들을 돌보았다. 1847년 음악과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외아들 Branwell이 31살의 나이로 죽고, 다음 해 12월에 오빠의 장례식에서 비를 맞고 감기에 걸려 심하게 앓던 30살의 Emily가 죽고, 6개월 후에 역시 2편의 소설작품을 남긴 29살의 막내 딸 Anne이 죽고, 자매들 중 유일하게 생전에 유명 소설가로 인정받고 결혼도 하게 된 Charlotte이 신혼 생활 일 년도 못 넘기고 임신 중 39살의 나이로 병사한다. 단명(短命)한 부론테 자녀들의 죽음이 너무나 급작스럽고 비극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당시 이 지역 주민의 평균 수명은 25세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그 주된 원인은 불결한 위생 환경과 특히 높은 지대에 위치한 교회 뜰 안에 차고 넘친 묘지 시체들에 의한 극심한 식수 오염이었다고 한다. 브론테 자매의 묘소는 교회당 건물 안에 있었다. 밖엘 나오니 한층 더 음산하고 칙칙한 늦가을 하늘아래 교회묘지가 눈앞에 펼쳐있었고 몇몇 관광객들이 묘비를 훑어보며 좁은 샛길(alley)을 거닐고 있었다. 나도 한번 걸어 볼 가 하여 공동 묘역에 들어섰는데 한 가운데쯤 오다보니 사람들은 어느새 다 빠져나가고 나 혼자 남게 된 것을 알게 되자 왠지 으쓱한 느낌이 들게 되었고, 새삼 주변을 살펴보자니 관들을 땅에 묻지 않고 그냥 땅 위에 놓고 돌 뚜껑으로 덮어놓은 것들도 많았는데 어떤 것은 덮개가 깨진 것도 있고 열려진 것도 있어 금방이라도 드라큘라가 뛰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이 지방 특유의 일진광풍(一陣狂風)이 불며 나무 가지들이 윙윙 울기 시작하자 머리카락이 쭈뼛해 지며 여주인공 Catherine의 망령이 달려드는 것만 같아 그만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