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가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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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어느새 11월의 문턱에 들어섰다. 참으로 세월이 무섭게 빨리 흘러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흔히 가을이 매우 좋은 절기임을 일컫는 말로, 예전에 한국에서 한문으로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나 글 읽기에 심기(心氣)가 좋은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란 표현도 있었다. 낙엽이 지는 만추(晩秋)의 계절에 어울리는,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감상해 본다. 시인 김현승(金顯承, 1913-1975))은, 평양 출생으로, 세 살 때 교회 목사가 된 부친을 따라 남하하여, 제주도, 광주 등지를 전전하다가, 다시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 숭실전문대 문과 재학 시 학교 교지에 투고하였던 시가 양주동 교수의 눈에 띄어 동아일보 문예란에 그의 두 편의 시가 발표됨으로서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 그는 특히 6.25 동란의 와중에서 광주에서 ‘시문학’(1951)을 창간, 단절될 뻔 했던 문학사의 맥을 이어주는 공적을 남기기도 했다.

호남 지역을 근거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던, 이성부, 이근배, 김송해등 40여명의 시인들을 ‘현대문학’에 천거(薦擧) 문단에 입문시켰다. 1930년대 초기에는, 일제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적 로맨티시즘이나 민족적 센티멘털리즘 경향의 자연미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짙게 풍기는 시를 썼으나, 1960년대 이후엔 기독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간 고독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 창작을 계속했다. 그의 대표작 ‘가을의 기도’는, 가을의 겸허함, 쓸쓸함과 기도하는 신앙적 자세를 잘 나타낸 작품으로,  “다소곳한 겸허,” “쓸쓸한 감상과 정서,” “반성의 기도”등이 극명하게 표출된 시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개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의 기도’는 시인의 ‘내면의 세계’를 표출한 지적, 신앙적인 세 스탠자(聯)의 서정시로, ‘겸허’ ‘고독’ ‘회개’(悔改)가 이 시작품의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시인 김현승은 특히 커피를 좋아해서, 자택(自宅)에는 언제나 커피 향이 짙게 배어있었고, 집에 오는 문우나 손님에게는 손수 커피를 끓여 내놓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의 호(號) 역시 ‘다형’(茶兄)으로 서울의 숭실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다 1975년 63세로 작고하였다. 광주광역시 무등산 자락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이 시의 마지막 행인 “마른 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라는 표현은, 이 시인이 후기에 와서 남다른 관심을 기우린 ‘고독’을 형상화 한 것이라 간주된다. ‘가을의 기도’에 대하여 시인 자신은, 다음과 같이 피력(披瀝)하고 있다. “이 시기에도 내 평생의 버릇대로 가을에 관한 시를 많이 썼는데,  그 중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시는 ‘가을의 기도’이다. 이러한 시에도 나의 기독교적 기질이 어느 정도 나타나 있다. ”다소곳한 겸허,“ ”쓸쓸한 감상,“ ”반성의 기도“ 이런 것들은 인간으로서의 나의 본질이었다.

시(詩)에 서만은 시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시에서 독자는 그 작가의 참 맛을 맛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김현승의 시 ‘가을 기도’는 가곡(歌曲)으로도 몇 편 작곡되었는데, 특히 2004년 5월 7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당시 유럽연합(EU) 대사였던 Dorian Prince가 작곡, 파이프 오르간으로 직접 연주하고, 영국 소프라노 Margaret Lysak이 독창한 ‘Autumn Prayer’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