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광마(光馬) 회고(回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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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작가 마광수(馬光洙) 교수가 9월 5일 자택인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자신의 유산을 준다는 자필 유서를 근거로 자살로 추정했다.

나는 베란다에 목을 맨 채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하필이면 국제펜클럽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세계한글작가대회에 참석차 한국으로 떠나는 날 공항에서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문학 행사 등 3주 동안 바쁜 일정 중에서도 충격적인 상념(想念)에서 끝내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마광수는 중학교에서 내게 영어를 배운 제자로서,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제자 중의 하나였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학교 교지에 시를 발표했었는데 한문으로 작성하여 동료 국어 교사가 옥편(玉篇)으로 한자(漢字)를 찾아보던 기억이 새롭다.

그가 다니던 ‘큰빛’ 중 고등학교는, 나의 모교(母校)이기도 한데, 철저한 기독교 학교로 교훈이 경천애인(敬天愛人)과 ‘그리스도를 바라보자’인데, 결국 66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강의 중 긴급 체포돼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대학으로부터 직위가 해직, 복권, 복직, 휴직을 반복하면서 후유증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결국 수십 년에 걸쳐 그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즐거운 사라’ 개정판을 출간해 마광수와 함께 구속되었던 문우 장석주 시인은, “한국 사회에서 출연하기 힘든 독특한 천재 작가로 마광수 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펼친 작가는 보기 드물다. 쾌락(快樂)은 모든 사건의 근본이자 목표라는 유미적(唯美的) 쾌락주의에 심취해 있던 그의 문학 작품이 당시 한국 사회 경직성 때문에 소외되고 따돌림 당했다는 점에서 불운했다”고 피력한 바 있다.

2011년 마광수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문학적, 문화적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검열을 완전 철폐, 표현의 자유의 완전한 보장에 기여하는 사람”이라며 “나는 쾌락설로 한국 문화를 잠에서 깨운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혔다. 마광수 영결식 빈소에서 원로 배우 김수미가 “글을 이상하게 썼다고 감옥 보내고, 동료 교수들이 왕따 시켜서 억울하게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 ‘사회적 타살’이라고 오열(嗚咽)하며 자해 소동을 일으킨 해프닝은, 나로서는 상당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마광수가 2005년에 발표했던 ‘자살에 대하여’라는 단문(短文)이 있어 소개한다.

“예술가가 자살을 하면 멋있고, 승려가 분신자살을 하면 소신공양(燒身供養)이고, 혁명가가 자살을 하면 열사(烈士)가 된다. 이건 참 우습다. 자살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개의 죽음이나 소의 죽음이나 다 같은 거지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생활고에 의한 자살은 비겁한 것이고, 치정 사건에 의한 자살은 병신 짓이고, 예술가의 자살은 근사한 것이라는 편견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또 자살이나 자연사나 병사(病死)가 무엇이 다른가? 죽는다는 것은 다 같은 것이다.“

마광수는 1977년 ‘현대문학’에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83년 국내 첫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89년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이고 공개적인 성담론(性談論)을 표방한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내면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평소 “사랑의 핵심은 성욕이고 사랑의 목적은 성욕의 해소”라며 “사랑해서 섹스하는 게 아니라 섹스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 문제를 음지의 영역에서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위선적 성문화를 바로 잡을 수 있고, 또한 본성(本性)에 솔직한 사고(思考)만이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변혁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고인의 제자인 나희덕 시인은, “야하다는 것은 관능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의미 보다는 인간이 문명화됨으로써 갖게 된 허위의식과 겉치레, 과잉 이데올로기로 인한 폭력성에 반대하는 의미로 봐야한다”고 평(評)했다. 대학 강단에서도 학교의 교훈(校訓)처럼 되어있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구(聖句)를 뒤집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고 역설(逆說)했다고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