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눈물의 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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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가을의 기도’ 시인 김현승(金顯承)은 숭실 대에서 문학 강의를 하다 1975년 63세로 작고하였는데, 광주광역시 무등산 자락에 그의 시비(詩碑)가 호남지역 문우들에 의해 세워졌고, 시비에는 그의 시 ‘눈물’이 새겨져 있다.

눈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이 시의 주제는, 생명의 순결성을 추구하는 다섯 스탠자(聯)의 상징적, 서정적 자유시로, 단순히 상징적 시어의 구사로 시의 경건하고 순결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다소곳한 겸허(겸허)’, ‘쓸쓸한 감상’, ‘반성의 기도’같은 정감을 자신의 본질로 자부하는 시인 김현승의 신앙과 인품이 그대로 표출되어 있다. 원래 이 시 ‘눈물’은, 6.25 동란 때 김현승이 창간 발행한 ‘시문학’ 창간호에 실렸던 초기 작품으로, 사랑하던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기독교적 신앙으로 승화시켜 쓴 시로, 화려한 꽃 보다 진실한 열매를 소중히 여기고, 외향적인 웃음보다 내향적인 눈물에서 인생의 가치와 미를 추구코자 하는,  다시 말해 ‘눈물’의 개념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전혀 독창적인 가치관으로 포착된 숭고한 시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인 자신도 이 시에 대하여 다음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내 가슴의 상처를 믿음으로 달래려고, 그러한 심정으로 이 시를  썼다. 인간이 신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변하기 쉬운 웃음이 아니다, 이 지상에 오직 썩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 앞에서 흘리는 눈물뿐일 것이다 라는 것이 이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눈물을 좋아하는 나의 타고난 기질에도 잘 맞는다.“

김현승 시인의 막내아들 김청배가 ‘가을과 눈물의 시인, 아버지를 그리며’라는 글에서 다음같은 소감을 밝혔다. “가을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세워진 시비(詩碑)에는 ‘가을의 기도’가 아닌 ‘눈물’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하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남기신 제목이 없는 시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난다. “주여 이 시간엔 잃게 하소서/요란한 말들을 잃게 하소서/그리고 나의 눈물 소리와/나의 눈물 소리만이 떨어져/이 빈 시간을 채우게 하소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적인 고뇌와 함께 신에 대한 회의에까지 빠져 ‘절대고독’의 심연에 까지 이르렀으나 돌아가시기 3년 전에 한번 쓰러져 죽음에 이르는 경험을 하셨다. 이후에는 결국 나의 눈물 소리만이 이 빈 시간을 채우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면서 겸허하게 자신을 다시 하나님께 맡기셨던 시인이자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당신이 경험했던 소중한 삶의 메시지가 이 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 졌으면 하는 염원을 담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생전에 김현승 시인을 직접 만나 뵐 기회는 없었으나, 그의 맏아들 김선배는, 대학교 영문과 1년 후배로서 가끔 문학 행사로 신촌 켐퍼스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또한 김선배와 영문과 동기 중에는 오혜령, 극작가 오태석도 있었다. 김선배는 현재 목사로서 미국 장로교회(PCUSA) 교단에서 부인과 함께 교육 책임자로 근무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