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다시 광마(光馬) 회고(回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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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젊은 여성의 반짝이는 긴 손톱에서 성적(性的) 상징을 읽어냈던 마광수는, 그의 첫 에세이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에서 ‘’야한 여자론“을 들고 나온 1980년대 끄트머리 한국 여성운동가 상당수는 여성운동의 하나로 길거리에서 공공연히 담배를 물었다. 민주화 열기가 문화 영역으로 확장되던 바로 그 시절 마광수는 그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하였다. 그는 한국 문학과 문화가 지나친 엄숙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며 특유의 ‘하수구 문학론’을 주장했다. 본능적 욕구를 분출하는 사회적 출구로서 집창촌(集娼村)을 옹호가기도 한 자신의 문학 역시 일종의 하수구(배출구) 구실을 한다며 그런 작품을 쓰는 자신이야말로 ‘민중 작가’라 자부하기도 했다. 필화 사건에 휘말린 ‘즐거운 사라’말고도 ‘가자, 장미여관으로’ ‘페티시 오르가즘’ ‘성애론’등을 통해 그는 ‘성담론 양성화’운동의 선봉에 서왔다. 마광수는 한국문학 최초로 여성에 성주체성을 부여한 작가였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서 작가는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고 했다. 마광수의 진심은, 짙은 화장의 야한 여자보다는 오히려 순수한 여자를 사모(思慕)했던 것 같다. 그의 맘속을 엿볼 수 있는 수필을 소개한다.

그때 그 미녀 수녀 생각 내가 스물두 살, 대학원 다닐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강사 일을 맡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맡은 클래스의 인원은 15명쯤 되었고, 한 학기 수업 기간은 10주였다. 그때 내가 가르친 학생 가운데 이탈리아에서 온 아주 젊은 수녀 하나가 있었다. 이름이 아마 ‘마리아 싼토스’였던 것 같다. 그때가 여름인지라 까만 수녀복이 아니라 베이지 수녀복을 입고 언제나 단정한 자세로 앉아 내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나는 한 학기동안 줄곧 마리아 수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청순하고 천사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나는 화장을 짙게 하고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이른바 ‘야한 여자’를 좋아한다. 그런데도 그때 마리아 수녀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그녀의 얼굴이 화장을 전혀 안했는데도,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특히 희디흰 피부 빛깔이 너무 고왔다. 백인들이라고해서 모두 피부가 희고 예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리아 수녀의 얼굴 피부는 정말 유리알처럼 매끄럽고 투명하리만치 흰 빛을 지니고 있었다.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 붉고, 눈은 호수처럼 맑았다. 특히 그녀의 마음씨가 정말로 고왔기 때문에 나는 더욱 강한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난 뒤에 그녀는 나를 그녀가 소속돼 있는 수녀원으로 초대해 주었다. 영등포 어디엔가 있는 수녀원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마침 수녀원에 부속된 성당에 다니는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이탈리아를 소개하는 영화를 보여주는 날이었다. 나는 먼저 그 영화를 보고나서 마리아 수녀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를 볼 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자배우로 육체파 미녀 ‘지나 롤로부리지다’가 나왔는데 마리아 수녀가 아주 티 없이 순진한 음성으로 나에게 “저 여자 참 예쁘지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전혀 질투심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고, 또 화려한 배우 생활이 부럽다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야하게 화장했다고 언짢아하는 기색도 없었다. 나는 지나 롤로부리지다의 선정적인 육체미에 솟구쳐 오르는 성욕을 느끼며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던 지라 마리아 수녀의 지순한 심정에서 우러나온 말에 무척이나 부끄러워지는 나 자신을 느꼈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서로 편지 연락을 했는데, 광주의 어느 수녀원으로 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는 소식이 끊겼다. 흔히 ‘조각 같은 완벽한 미녀’라는 말을 쓰는데, 나는 마리아 수녀의 얼굴을 보고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왜 그녀는 하필 수녀가 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조심스럽게 훔쳐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한국말을 가르치던 그 때가 흡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마음 속에 새삼 선명하게 떠올라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