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둠키(Dum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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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지난 주 토요일은 참석할 행사 일정이 세 번이나 겹치는 매우 분주한 주말을 보냈다. 한국학교협의회 웅변대회 심사와 시카고문화회관 음악회와 미술전시회 참관, 그리고 저녁에는 청수회 발기모임 만찬(晩餐)이 있었다. 나는 문화회관에서 있었던 음악회를 즐겼는데, 오랜만에 나운영의 한국전통 가곡(歌曲) ‘달밤’과 특히 Aionios Trio의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1904) 피아노 삼중주 ‘둠키’는 매우 감명적이었다. ‘Aionios’는 희랍어로 ’영원‘이란 뜻인데, 삼중 주 한인여성단원들이 ’둠키‘ 전 곡을 충실하고 인상 깊게 연주하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둠키’ CD는, 영국의 Joachim Trio와 수필가 이영주 씨의 세 자매 Ahn Trio, 그리고 요요 마, 김영욱, 임마누엘 액스(Ax)의 음반인데, 안 트리오의 연주를 나는 자주 듣는 편이다. 글래머 스타일 안 트리오의 악보에 구애받지 않고 톡톡 튀는, 자유분방한 대담한 연주는, 간혹 음악 비평가들의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천생 적으로 호흡과 기가 통하는 세 자매들의 협연 시너지 에서 분출되는 생기발랄한 연주 솜씨는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드보르작은 네 개의 피아노 삼중주곡을 남겼는데, ‘둠키’는 그가 미국으로 오기 바로 전 해인 1891년 50세 때 작곡한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으로 프라하에 있는 Charles 대학에서  그 해 4월 11일 명예 박사학위를 받던 자리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드보르작 자신이 피아노를 쳤다. “dumky”는 원래 슬로바키아 어휘 “duma”에서 파생된 명사 “dumka”의 복수형으로  “생각, 숙고, 공상”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드보르작의 피아노 트리오 E 단조 ‘둠키’는 통례적인 4 악장이 아니라 여섯 개의 “둠카”로 구성되어 있는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애가(哀歌)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민요풍의 멜로디와 춤곡은 19세기 말 폴란드와 보헤미아에서 꽤 유행되던 곡으로, 드보르작은 첼로의 서글프고 느린 박자의 멜로디와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경쾌하고 빠른 음조를 적절히 변환시켜 가며 평균 연주시간 32분 정도의 독창적이고도 매혹적인 실내악으로 만들어 놓았다. 드보르작이 활동하던 19 세기 후반은 유럽에서 문화적으로 소수민족의 정체성이 의식화되던 시기이기도한데, 특히 드보르작은 각 민족 고유의 민속, 향토 음악을 천착해 작곡 창작 인스피레이션의 원천으로 삼도록 강조했는데, 그가 1892년 뉴욕 국립음악원의 원장으로 초빙을 받았을 때, 가난한 흑인과 Native American 인디언 학생들에게는 학비면제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성향을 짐작 할 수 있다. 그가 3년간 미국에 머무르면서 작곡한 현악 사중주 ‘아메리카’와 “신세계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9번에 흑인 영가와 인디안 민속 음률과 정서가 짙게 풍기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드보르작은 만년에 비엔나에 와서 노후를 편안히 지내라는 브람스의 초청을 끝내 사양하고, 모국인 프라하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체코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며 작곡가 Josef Suk(1874-1935)은 드보르작의 제자이자 사위가 된다. 그는 당시 유럽을 누비던 기관차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비둘기 부화(孵化)라는 음악가 치곤 참으로 묘한 취미를 또한 갖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