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만 입이 내게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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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일생 동안 세 가지 점에 대하여 감사와 긍지심을 갖고 살았다고 한다. 첫째는 그가 남자로, 둘째는 희랍인으로 태어났고, 세 번째는 위대한 소크라테스를 그의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희(古稀)에 접어든 나로써 지나온 인생행로를 새삼스럽게 되돌아보며 감사할 조건들을 헤아려 보자면 실로 내게 만 입이 있어도 모자랄 터이겠지만, 나 역시 세 가지로 요약해 본다면,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남자로 출생한 것을 감사해야 될 것 같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지구촌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인 미국에서 Korean American으로 신바람 나게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점이 참으로 감사드릴 일이고, 무엇보다도 컴퓨터와 인터넷과 같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일상생활의 편이가 극대화된 새 천년 시대의 혜택을 우리가 맘껏 누리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어느 사회학자의 주장대로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삶의 질은 봉건 시대 군주들이 향유하던 생활수준보다도 훨씬 상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눈발이 휘몰아치던 추운 겨울철 이불을 뒤집어쓰고 화물 기차 지붕 꼭대기 위에 실려 며칠 동안을  꽁꽁 언 주먹밥을 먹으며 피난 가던 일하며, 나는 지금도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겪었던 6. 25 한국전쟁의 비극과 참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러한 환란 중에도 온 가족을 지켜주시고, 결국은 태평양을 건너 이곳 미국 땅에 정착하게 해주신 섭리를 내가 아무리 감사한대도 모자랄 것이다.

더구나 100년 전 만하더라도, 아시안 이민자들을 포함한 유색 인종은 미국에서 인종 차별적 박해와 린치를 당한다 해도 법적으로 마땅히 호소할 길이 없었고, 심지어 그 자녀들조차 공립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던 비참한 옛 시절에 비하면, 다문화 사회가 강조되어 ‘Salad Bowl’이라는 표현대로 각 소수계 민족의 문화가 존중되고, 연방 자금으로 공립학교에서 이중언어 교육이 필수적으로 실행되는 오늘날 우리가 미국 땅에 산 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정말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옛적에 한국에서 그처럼 갖고 싶어하던 Colin Davis의 핸델 메시아 원판이나 Pierre Fournier가 연주하는 바하의 첼로 무반주 협주곡을 이제는 안방에서 맘대로 들을 수가 있고, 감명 깊게 보았던 ‘로마의 휴일’이나 ‘초원의 빛’, ‘황태자의 첫사랑’ 영화들을 쉽사리 DVD로 사 모을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고 모국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나가 문우들과 인사동 골목에서 전통 차나 음식을 즐길 수 있으니, 바로 이런 삶의 쾌락이야말로 저 김성탄의 ‘불역쾌제’(不亦快哉)가 아니랴 싶다.

마지막으로 요즈음 내 인생의 화두(話頭)를 공개하면서 이 글을 끝맺기로 하자.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살아서 천당, 죽어서도 천당.“(Paradise in this life, Paradise after life t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