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뭉크의 ‘절규(絶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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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시간이 없어 ‘인형의 집’의 작가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이 11년 동안을 살다 숨을 거둔 오슬로의 한 아파트 건물을 개조하여 근년에 문을 연 ‘입센 박물관’을 방문할 수 없었던 것은 끝내 유감이었지만, 아침나절을 Gustav Vigeland(1869-1943)가 국가에 기증한 인간의 일생의 삶을 형상화시킨 200여 점의 조각상들이 전시된 공원을 감명 깊게 구경하고 나서  스톡홀름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점심 후 짧은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마침 근처에 있던 국립미술관엘 성급히 뛰어 들어가 2층에 전시돼있는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대표작 ‘절규(The Scream)’를 잠시나마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뜻밖의 행운이었다.

뭉크 자신은 81세로 장수(長壽)한 편이 긴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북유럽 민속신화에 출몰하는 무서운 망령들과 잊지 못할 검은 죽음의 그림자가 요람에서부터 항상 주변에 따라 다녔다고 전해진다. 그의 모친은 폐병으로 그가 5 살 때 죽었으며, 누이 소피와 형 앤드리스가 또한 같은 폐병으로 일찍 사망했고, 누나 로라 와 할아버지는 극심한 우울증세로 요양원에서 병사했다.

병약한 몸으로 결핵과 만성적인 천식폐렴으로 시달렸던 뭉크는 13살 때 성탄 전야에 갑자기 공포감에 휩싸여 절규를 했던 경험이 있음을 피력한 바 있는데, 대부분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그의 심리적 불안감을 표출한 것으로 그의 대표작 ‘절규’를 보노라면 고뇌에 찬 고독한 인간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고막을 꽤 뚫고 가슴에 비수처럼 울려와 꽂히는 듯한 전율을 맛보게 된다. 뭉크는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동기를 1892년 1월에 쓴 일기에서 밝히고 있는데, 어느 날 해질녘 두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피 빛처럼 붉어졌고, 피곤하고 우울증이 겹쳐 그냥 도로난간에 기대서서 불타는 구름을 쳐다보고 있는데 친구들은 계속 멀어져 가고만 있어, 자기는 그만 공포에 질려 끊임없이 날카로운 절규를 맘속으로 내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93년 베를린의 한 호텔 방에서 완성이 됐는데, 그가 처음 독일을 방문했던 1892년에 그려진 ‘절망(Despair)’을 보면 사실 같은 배경의 그림으로 단지 난간에 기댄 인물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해골 모습으로 환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뭉크의 ‘절규’는 노르웨이의 미술품 수집가 Olaf Schou가 1901년에 오슬로 갤러리에서 $15,000에 구입하여 1909년 국립미술관에 기증한 것이었는데, 1994년 노르웨이에서 동계올림픽이 한창 진행되던 틈을 타 2월 12일 새벽 도난을 당했는데, 감시 카메라에 찍힌 사진에는 두 범인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2층 창문을 부수고 불과 일 분만에 훔쳐간 것으로 판명이 됐는데, 당시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이 명화(名畵)의 가치는 4,800만 파운드로 평가되었다. 결국 도난 당한지 3개월 만에 범인들이 잡혔고, 다행히 미술 작품이 별다른 손상 없이 회수(回收)됐는데, 분실기간 동안 ‘절규’가 전시돼 있던 자리에는 대신 모조품이 “Stolen”이란 표제가 붙어 걸려있었는데, 일본 관광객들이 단체로 와서 하루 빨리 원작품(原作品)을 되찾게 해달라고 미술관 안에서 고사(告祀)를 지내 당시 장안의 화제 거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