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월광(月光)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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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월광 소나타’라고 하면 우리는 곧 베토벤(Beethoven, 1770-1827)을 연상할 것이겠지만, 정작 베토벤 자신은 제목만 가지고서는 자기 작품인 줄은 전혀 모를 것이다. 베토벤의 환상적인 피아노 소나타 14번에 “월광”(Moonlight)이란 부제가 붙어진 것은 그가 서거한지 5년이 지나서, 베를린 출신 시인이자 음악평론가인 Ludwig Rellstab가 특히 제1악장을 듣고 “교교한 달빛이 흐르는  스위스 Lucerne 호수의 잔물결에 흔들리는 조각 배 같다”고 평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달밤에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음악을 사랑하는 눈 먼 소녀 집 창가를 지나다 곡을 만들어 주었다던가, 비엔나 교외의 어느 귀족의 저택에서 창문으로 흘러드는 달빛에 감동되어 즉흥적으로 작곡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    베토벤이 31세가 되던 1801년에 피아노를 교습하던 방년 17세의 백작 딸 Giulietta Guicciardi에게 헌정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에게 연정을 갖고 있었지만 신분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다는 일설도 있기는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또한 피아노 소품으로 널리 알려진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이 40세가 되던 1810년에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Therese Malfatti를 위해 작곡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이 위대한 악성(樂聖)이 “불혹지년”(不惑之年)의 나이에 접어들었던 1810년은, 베토벤 생애에 있어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겹치는 매우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해이기도한데, 모처럼의 청혼이 거절당하는 실망 속에서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베를린의 여가수 Amalie Sebald 와 사귀게 되고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괴테와의 만남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와 교향곡 제7번과 8번, 그리고 ‘에그몬트 서곡’을 이미 끝내놓고 있었지만, 지폐 가치의 하락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다시 겪게 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내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엘리제를 위하여’란 작품을 새삼 들먹이게 된 이유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들렸을 때 시민광장 뒤편으로 제법 울창한 숲 속을 잠시 거닐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베토벤이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말을 여행가이드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도심을 다뉴브 강이 흐르면서 물이란 뜻의 BUDA와 붉은 벽돌이란 뜻의 PEST로 나뉘어진 신시가와 구시가지가 여러 개의 다리로서 연결되어 이루어진 도시가 부다페스트인데, 1873년에 헝가리 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2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유서 깊은 세체니(Szecheny) 다리를 건너 페스트 구시가지로 들어와서 안드라시(Andrassy) 대로를 따라 북상하다보면 대천사장 가브리엘이 로렌 십자가와 헝가리 왕관을 들고 있는 높다란 밀레니움 기념탑이 세워진 영웅 광장에 도달하게 되는데, 광장 양편에는 국립 미술관과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고, 반원형으로 세워진 14명의 헝가리 왕과 정치가들의 동상 뒤편 석교로 이어진 숲 지대가 바로 베토벤이 산책하며 월광 소나타를 구상했다는 바로스리겟(Varosliget) 공원이다. 베토벤이 머리도 식힐 겸 휴양 차 여름에는 보헤미아 지방을 자주 여행했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당시 그가 거주하던 빈에서 마차로 하룻 거리인 이곳을 들렸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헝가리 출생 음악가로는 또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와 발토크(Bela Bartok), 코다이(Zolten Kodaly)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