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art가 제공하는 유용한 식품 상식]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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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의 주제는 ‘라면’ 입니다. 라면은, 우리의 식생활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한끼 식사 대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필수 식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전에는 라면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면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현대에는 기존의 라면 외에도 아주 다양한 라면이 출시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판매가  증가하고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라면이 건강에 나쁘다라는 인식은, 아무래도 예전에 MSG(인공 조미료) 자체가 막연히 나쁘다고만 하는 측면의 내용이 많았기 때문으로, MSG가 무조건 건강에 해로운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많이 있으며, 오히려 염분의 과다섭취가 더 이롭지 않음이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라면의 시작은 어디였을까요? 한국? 중국? 일본?  여러 설이 있지만 중국인들이 먹던 납면(拉麵)으로부터 라면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중국의 란저우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즐겨먹던 국수 중 하나였던 납면은 중국어로 [라미엔]이라고 발음합니다. 그러나 당시 ‘라미엔’은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먹는 라면의 형태는 일본 닛신식품이 1958년 8월 25일 ‘치킨라면’을 대량생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닛신식품을 설립한 안도 모모후쿠입니다. 그는 한 선술집에서 뜨거운 기름에 반죽을 입힌 어묵이 튀겨질 때 밀가루 속의 수분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라면의 원리를 생각해 냈다고 합니다. ‘국수를 튀긴 후 건조시키면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그걸 다시 뜨거운 물에 넣으면 원래 상태로 풀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라면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이 건면을 튀겨서 휴대하고 다녔는데 이러한 점을 미리 알고 라면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라면의 출시는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이 출시한 ‘삼양라면’입니다. 당시 라면은 한국전쟁 후 식량난에 허덕이던 국민들의 허기를 달래주었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제2의 쌀’입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라면은 국민음식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시 삼양라면의 출시가격은 개당 10원(지금으로 따지자면 1불 이하 정도의 체감), 당시의 시설 투자와 원료비, 관리비 등을 감안하면 10원은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7년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았는데, 이윤보다 서민의 배고픔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의 마인드 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1965년 정부가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정책을 장려하면서 라면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산업이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시장은 급성장을 하게 되었으며 이때 많은 식품회사들이 앞다퉈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은 1965년 ‘롯데라면’을 출시했으며 많은 경쟁이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회사는 삼양과 농심 정도이고 나머지 회사들은 도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농심의 맹추격이 시작됩니다. 1960년대 80% 이상의 시장점유를 했던 삼양은 농심의 ‘소고기라면’ ‘농심라면’ 의 선전으로 점유율이 60% 선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1980년대 라면시장은 대변혁의 시기를 맞습니다.  한국야쿠르트, 청보, 빙그레, 오뚜기(청보 인수합병) 등의 기업들이 라면 사업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1985년 라면의 시장구도에 이변이 생기는데, 농심이 사발면과 너구리, 안성탕면 등 연이은 히트상품의 인기에 힘입어 1985년 처음으로 삼양을 뛰어넘어 라면 시장 1위에 오른것입니다. 국내서 라면사업이 시작한 지 22년만의 일로, 오늘날까지도 라면업계의 정상은 농심이 차지하고 있으며 ‘신라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너구리’ 등은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지금도 다양한 종류의 라면들이 출시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라면 시장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알고 헤아려주는 기업이 가장 성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H-Mart 이주용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