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上善若水(상선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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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두표(시카고 문인회 회원) 

‘최상(最上)의 선(善=德)은 물(水)과 같다.’라는 뜻으로 글자 안에 숨겨진 깊은 뜻을 살펴보면, 물은 만물(萬物)을 이롭게 하여 다투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있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거처로는 땅을 좋아하고, 마음은 깊은 것을 좋아 하고, 사귀는 데는 어진 것을 좋다고 하고, 말(言)은 진실(眞實)한 것을 좋다고 하고, 정치(政治)와 법률(法律)은 다스려짐을 좋다고 하고, 일에는 능숙한 것을 좋다고 하고, 움직임에는 때에 맞음을 좋다고 한다. 오직 싸우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

위의 격언(格言)과 같은 글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 8장 ‘무위무심(無爲無心)한 물의 선덕(善德)편’에 실려 있는 글로써 한마디로 줄여서 ‘상선약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한자어 원문(原文)으로 소개해 보면,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 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惟不爭 故, 無尤’(상선 은 약수 이니라, 수선이만물이부쟁 하고 처중인지소오 니라. 고로, 기어도 니라. 거선지 하고 심선연 하고 여선인 하고 언선신 하고 정선치 하고 사선능하고 동선시 니라. 부유부쟁 이라. 고로, 무우 니라.) 무우(無尤)란 허물, 과실(過失)이 없다는 뜻입니다. 앞에 글을 부연(敷衍)해서 다시 설명해 보면, 결국 ‘무위 무심한 물의 선덕(善德)’을 말하면서 무위(無爲)란, 사람이 도(道)의 자세에 어긋나지 않느냐. 또는 그것을 왜곡(歪曲) 내지는 해(害)치는 것을 ‘위’(爲). 즉 인위(人爲)의 악덕(惡德)으로서 엄격히 부정하는 것이며, 노자(老子)는 특별히 성인(成人)의 이와 같은 자세를 무위(無爲)라고 불렀으며, 덕(德)이란 말도, 유교(儒敎)의 덕(德)과 구별하여, 노자는–>상덕(上德=常德)이라 하여 최고(上)이면서도 항상(常)있어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常)은, 향(向)에서 온 것으로, 이는 집을 지으면 바람이나 햇볕이 잘 들어오도록 창문(口)을 반드시 만들어야하며, 남쪽을 향해 만들었으며, 북쪽으로 맞바람이 불도록 남북으로 창문을 만들었다는 뜻의 글자로 사람은 항상 선(善)과 덕(德)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상선약수(上善若水)란 서예가들이 선호하는 글자이며 우리들은 현판으로 많이 보아왔습니다. 즉,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만물(萬物)에 커다란 혜택(惠澤)을 주지만, 만물과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 저습(低濕)한 곳에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위 무심(無爲無心)한 자연의 도(道)와도 같은 것이며 누구도 가기 싫어하고, 또 갈 수도 없는 곳 까지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대지(大地)를 적셔,–>풀(草)을 자라게 하고,–>그 풀을 얼룩말이 뜯어먹고,–>얼룩말을 사자가 잡아먹고,–>사자가 죽어 땅속에 뭍이면–>흙이 되어 다시 풀을 자라게 하고,–>물이 사자를 변화시켜 풀이된 것을 얼룩말은 뜯어 먹습니다.

이것이 물(水)의 선덕(善德)이며, 상선(上善)이며, 상덕(常德)이라는 것입니다. 또 물은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나게,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랗게, 차게 하면 얼음이 됐다가, 따듯해지면 다시 물이 되고, 열을 가하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다시 비(雨)가 되어 이 땅에 내려와 자연(自然)을 살립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바다로 가는데 바다는 모두를 받아주고 어디서 왔느냐? 따지지 않고 화합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