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萬石君(만석군)의 由來(유래)

135

방두표/시카고 문인회

우리나라 말로, ‘만석꾼’이라고 하면 곡식(穀食)의 만 섬, 썩 많은 곡식을 수확(收穫)하는 농부(農夫)를 말합니다. 쌀농사를 지어 추수할 때 만석(萬石)의 엄청난 수확을 하는 부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래 만석군(萬石君)이란 한집안의 아버지와 4아들이 모두 출세하여 2천여석의 록(祿)을 받는 가문이 되자 사람들은 그 집안을 가리켜 존칭하여 부르기를 ‘만석군(萬石君)’이라고 부르게 된 것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사마천(司馬遷)(B.C 145- 86)이 쓴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로, 옛날 중국의 <석분>(石奮)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부친은 조(趙)나라에 살다가 진(秦)나라가 천하 통일을 했을 때 하내(河內) 땅의 온(溫)지방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부친을 따라 하내 땅에 살고 있던 <석분>은 유방(劉邦;漢高祖 AD 256- 195)이 항우(項羽)(AD 232- 202)를 공격하기위해 하내 땅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당시 15세의 말단 관리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유방>의 밑에 들어가 시중을 들게 되었다. 그의 주변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는 <석분>을 유심히 바라보던 <유방>은 그 소년의 예의 바른 태도를 매우 귀여워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방>이 그를 불러 물어보았다. ‘부모님과 형제는 있느냐?’ ‘예, 어머님이 살아계시지만, 앞을 못 보시며 집안이 가난합니다. 또 누나가 한 명 있는데, 거문고를 좋아합니다.’ 그 말을 듣고 <유방>이 다시 물었다. ‘넌, 나를 계속 따라다닐 생각이냐?’ ‘예, 제 있는 힘을 다해 받들고자 합니다.’ <유방>은 즉시 그 에게 벼슬을 주어 의전행사와 문서관리의 일을 맡게 했으며, 그의 누나에게도 적당한 벼슬을 내렸고 집도 장안(長安)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석분>은 특별히 뛰어난 재능은 없었지만 공손하고 건실한 점에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벼슬은 계속 높아졌는데, 문제(文帝) 때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들의 추천으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자대부(太子大夫)라는 직책에 임명되었다. 후에 그가 가르친 태자였던 효경제(孝景帝)가 즉위하자 그의 벼슬은 더욱 올라갔지만 <효경제>는 그가 너무도 예의바르고 건실했기 때문에 곁에 계속 있는 것을 거북하게 여겨 지방의 재상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배려를 했다. 그런데 <석분>은 그 사이 장남 건(建)과 더불어 차남과 삼남, 그리고 막내인 경(慶)까지 네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아버지의 훈계를 잘 따라 모두 착실한 선비로서 효행이 깊고 행실이 단정했으며, 벼슬도 각각의 아들들이 모두 2천 석의 녹(祿)을 받는 지위에 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효경제>는 ‘<석분>과 그의 네 아들은 모두 2천 석으로 합치면 1만 석이군. 부귀(富貴)와 은총(恩寵)이 한 집안에 다 모여 있소.’ 라고 말하고는 이후부터 <석분>을 만석군(萬石君)이라 예우를 해서 불렀다. 원래 ‘萬’(만)은—>독충인 전갈(全蠍;전헐)의 산형으로 전갈의 독(毒)은 작은 양으로도 아무리 거대한 짐승이라도 죽일 수 있어 ‘많을 만, 여럿 만, 만약 만. 등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말의 ‘꾼’은 선비(士)에 비해서 낮추어 부르는 비속어(卑俗語) 로서, ‘어떤 일을 전문적,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의 뜻으로, 씨름꾼, 장사꾼, 농사꾼, 지게꾼, 노름꾼, 사기꾼 등으로 하대하여 부르고 있으나,’ 원래의 ‘만석군(萬石君)’은 군자(君子)를 지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