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는 거처 My Dwelling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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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생명은 삶의 거처가 필요하다.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한 곳을 찾는다. 우리 집 처마 밑 나무에는 비둘기와 라빈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를 기른다. 연어도 바다를 마음껏 다니다가 산란기에는 조용하고 안전한 강을 따라 올라온다. 우린 엄마 태와 품속에 살 때가 참으로 좋았지만 세상으로 나가 스스로 살아야 할 때가 온다. 전쟁과 기근, 태풍으로 삶의 바탕이 무너지고 살 곳을 찾아 떠나기에 도시마다 국경마다 붐비게 된다. 아니면 길거리 다리 밑이나 건물 곁을 거처로 삼기도 한다. 정부나 교회, 자선기관에서 거처를 제공하나 일시적이다. 어디가 참으로 살 곳인가?

스스로 일을 하고 월세나 전세를 내며 살 거처를 마련하다가 집을 마련하고 입주할 때 거처가 안정되었다고 얼마나 기뻐하나? 나는 지금 사는 거처에 근 30년 살고 있으면서 집에 들어올 때마다 주께서 주신 보금자리라 감사를 드린다. 학군이 좋고 편리한 곳으로 옮기고 은퇴를 하면 따뜻한 남쪽으로 옮기든지 스노우 버드로 추운 겨울을 남쪽에 가서 지나는 자가 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어 여기 안주하고 있다. 과거 다달이 세를 내고 살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얼마나 안정되고 편안한지! 선교지나 외지에서 일년 이년 살다가 돌아와도 나의 거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정을 준다.

세 아이들이 어린 때 우린 가족 여행을 자주 하며 친구들을 방문하고 명소들을 찾았다. 호텔에 들어갈 형편도 아니지만 천막을 선호하였다. 저녁 도착하는 곳에서 천막을 치고 음식을 만들어 즐기고 천막에서 피곤을 풀며 가족이 단 잠을 자는 것이 기쁨이요 행복이었다. 때로는 밤에 폭풍으로 천막은 무너지고 물로 덮일 때도 있었지만 이웃에 트레일러를 가진 인심 좋은 밴 주인이 자리를 나누어 주는 사랑도 받았다. 천막의 삶에는 소망과 믿음, 기쁨과 사랑의 협력이 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지만 안정된 삶을 살다가 탈출하여 자유민으로 하나님 약속의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천막에 살았다. 천막을 걷고 치는 일이 계속되며 불평과 원망도 있었지만 그래도 앞을 향한 소망과 믿음이 그들을 붙들었다. 천막이든 돌집이든 어떠한 형태라도 일시적이다. 낡아지고 무너지는 날이 온다.

우리 삶이 그러하다. 생명이란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할 때 가능하다. 영혼이 우리 몸을 집으로 삼을 때 생명을 누리지만 몸이 쓰러지거나 영혼이 떠나면 죽음이다. 죽음 후에도 삶이 연속된다는 생각으로 이집트의 파라오는 자기를 위하여 피라밋을 수십년간 건설하고 삶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종들과 함께 부장한다. 무덤에 묻어도 다시 일어날 날을 기대하며 그때까지 편안히 쉬라 Rest in Peace 한다. 비바람이 불어도 안전한 거처일 수 있다.

천막이나 토굴, 월세나 궁궐에 살아도 기쁨과 행복, 자유와 평안을 가짐이 삶의 복이 아닐까? 그런 거처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는 다르다. 속에서 올라오는 하늘의 평안과 기쁨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믿는 자를 위하여 거처를 준비하러 가서 준비하면 그들을 영접하여 함께 살 것이라 하신다. 기쁨과 평안, 자유와 찬양의 거처다. 그 날을 기다리며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거처로 삼아 오늘 기쁨을 누리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