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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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박사(횃불재단 트리니티 목회학 박사 프로그램 담당)

 

현대 복음주의 교회의 구원론에 의하면, 믿음으로 천국 간다. 그런데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심령이 가난하다, 즉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가, 마음이 가난해야 가는가? 아니면,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갈 수 있는가?
예수님의 천국에 대한 가르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0). 이번에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자의 자격 조건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로 규정한다. 옳은 것을 위하여 고난을 겪어야 천국에 간다. 이 말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천국에 가는 조건으로 고난과 핍박이라는 어떤 행위를 요구하는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것이지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고, 믿음과 행위는 서로 적대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산상수훈에 의하면,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라는 행위가 천국의 조건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누가 천국에 가는가?
왜 이런 고민이 생길까? 이는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기독사에 있어서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는, 아쉽게도 구원론이 복음주의라는 이름의 탈을 쓴 구원파의 가르침에 의해서 초토화되었다는 것이다. 초토화되었다는 표현이 조금은 과장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구원받는 믿음에 대한 정의를 성경에 의해 기술하지 않고, 언어 사전적 정의나 사람들이 현재 문화에서 생각하는 개념으로 내린다는 데에 있다.
현대인들은 믿음을,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자기가 “어떤 것이 옳다, 또는 맞다”라고 여기는 것’으로 정의를 내린다. 이런 생각을 천국 가는 믿음에도 적용한다. 현대 복음주의 교회에서 생각하는 구원받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가 나를 구원했다는 것을 믿는다”라고 한다. “예수가 나를 구원했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하나님이 나를 예정했다고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했다고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했다고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고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인식론적 질문이 생긴다.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하나님이 당신을 예정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는가? 하나님이 당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용서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간단히 말해, 당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이에 대해 대부분 현대 기독교인은 “그냥 그렇게 믿으라”고 대답한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일종의 최면이다.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Just believe.”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그냥 그렇게 믿으면 바로 그 믿음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예정했다고 그냥 그렇게 믿으면 바로 그렇게 믿는 그 믿음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 죄를 사했다고 믿으면 바로 그렇게 믿는 그 믿음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바로 구원파의 믿음이다. 뉴에이지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