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돈을 빌려 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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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

얼마전에 돌아가신 어마어마한 부자이야기다. 지인 하나가 그 부자에게 급하게 돈을 빌리러 갔다. “제가 3일만 있으면 돈이 생깁니다. 딱 3일 후에 돈이 생기면 바로 갚아 드릴테니 3일만 급하게 돈 좀 빌려주십시오.” 이 이야기를 들은 부자가 이런 말을 했다. “그럼 지금 당장 나에게 빌려서 쓰려고 한 돈을, 딱 3일만 더 기다렸다가,  당신 돈이 생긴 후에 그 때 쓰시면 되겠네요.” 맞는 이야기다. 이제는 이미 죽어 버린 그 부자에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는데, 죽기전에 돈이나 빌려주고 죽을 것이지.’ 하지만 만일 그 부자가 돈을 빌려줬다면 아마도 3일 후에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을 것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딱 빌려갈 때까지만 생각을 한다. 갚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꼭 갚을 사람은 처음부터 빌리지도 않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한 사기는 돈을 빌렸다가 갚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기는 그래도 양반이다. 최소한 빌려갈 때만큼은 아쉬운 소리를 하기때문이다. 요즘 사기꾼들은 돈을 뺏어가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처음에는 투자하라고 해 놓고 나중에는 계속 기다리라고 한다. 요즘 사기꾼들은 자신이 국세청직원이라고 속이거나,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당장 돈을 보내지 않으면 당신을 체포하거나 구속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들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돈을 뺏긴 것도 억울하지만, 그들에게 속았다는 수치심에 더욱 괴로워 한다. 피해자들은 자신을 너무 비하할 필요가 없다. 사기를 친 사람이 잘못이지 당한 사람 잘못이 아니다.

최근에 한 동창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주위 사람들한테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을 한다고 말했더니 다들 ‘동창의 아들이나 딸 결혼식’이 아니라, 동창이 결혼하는 것이 맞느냐고 되묻는다. 맞다.  이제 50살이 된 내 동창이 결혼식을 했다. 그것도 첫번째 결혼식을 말이다. 그 친구의 결혼식에는 꼭가고 싶었다. 그 친구는 많은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준 적이 있었기때문이다.  50이 다되어서 친구의 결혼식에 갔더니 다시 청년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려고 그랬는지 다른 동창들도 참 많이 왔다. 결혼한 친구는 몇년 전에 나에게 부탁을 하나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조카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데 학비 융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비 융자를 받는데 재정보증이 필요하니, 나에게 코사인(Co-sign)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학비융자는 3만불 정도를 받는다고했다. 한국말로 하면 돈을 빌리는데 연대보증을 서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부탁을 거절했다. 내가 그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고나서 나중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 친구는 그때 내가 코사인을 하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며,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때 내가 코사인을 해주지 않아서 결국 자신이 그 조카에게 학비를 빌려주었단다. 하지만 그 돈을 아직도 못받았단다. 그래서 자신이 요즘 경제적으로 조금 힘이 들다는 말도 했다. 그렇게 이야기 해준 친구가 참 고마웠다. 그래서 더욱 그 친구 결혼식에 꼭 가고 싶었던 것이다. 친구가 코사인을 해달라고 했을때 나는 돈을 빌려 주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친구의 조카에게 과연 ‘내가 장학금으로 3만불을 그냥 줄 수있을까’를 고민했던 것이다. 그럴 수없어서 거절했다. 누군가가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 그 돈을 그 사람에게 그냥 줄 수있으면 빌려줘도 좋다. 하지만 돌려 받을 생각이 있다면 절대로 빌려주면 안된다. 그리고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 나를 떠난 사람은 그냥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면 훗날 반드시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요즘 한국에는 ‘빚투’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여성들이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폭로했던 “미투 운동”이 한때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연예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못받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공개하는 것을 놓고 ‘빚투’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빌려준 돈을 못받는 것은 안갚는 사람의 잘못이다. 하지만 빌려준 사람도 너무 마음이 약했던 잘못이 있다. 야박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돈은 빌리지도 않고 빌려주지도 않는 것이 맞다.<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시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