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덕담의 생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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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말만 잘하면 천 냥(千 兩) 빚도 갚는다“  이것은 한국에서 쓰는 대중적인 문장이고, “온정이 깃든 말은 삼동(三冬)추위도 녹인다“ 이것은 중국에서 일반인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가득하다. 말 한마디로 빚 청산도 하지만, 말을 잘못해서  평생을 힘겹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가 사는 이곳은 그래도 투명한 사회이다. 또한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이기도 하며,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덕담이나, 유머를 사용해서 쉽게 웃음 지울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덕담은 해가 바뀌면, 친분이 있는 사람끼리는 잘들 사용한다. 또한 덕담(德談)을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쓰면 더욱 더 친밀감을 갖게 된다. 우리에게는 복 많이 받으란 덕담이 대표적인 것이다. 복 받으란 말에는 모든게 포함된 함축성있는 말이다. 덕담은 말을 하는 사람 쪽의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 쪽의 말이 아닌가 한다. 덕담이란 듣는 상대가 기쁘게 받아 들여야 하는 말이다. 듣기가 거북하다거나, 부담스러우면 이것은 덕담이 아니다. 덕담은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하는듯 하다. 덕담을 할 때도 조심을 해야 한다. 덕담 속에 상대편의 결점을 직설적으로 말하면, 듣는 사람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대화기법의 기본은 상대가 듣기 좋은 말부터 하면 된다. 강요 내지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명령조의 표현은 자제 해야한다. 긍정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에게 희망을 줄수 있는 표현을 해야 한다. 덕담은 아부가 아니다.

중국의 순자(荀子)는 “ 은 말(言)을 남에게 베풀음은 비단 옷을 입히는 것보다 더 따뜻하다“ 라고 하였다. 적절한 좋은 말 한마디는 어른에게는 공경이 되고, 친구에게는 우정, 아랫사람에게는 격려가 된다. 그러니 덕담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다. 한때는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 걸려 있었던 성경 구절이 있었다. 성경에서 나타난 가장 좋은 덕담이기에  믿던 안 믿던 그 글귀를 좋아 했나 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보다 더 좋은 덕담은 없는듯 하다.  누구에게나 해당이 되는 덕담이 아닌가 한다.

덕담 비슷한게 위트있는 유머(Humor)이다. 유머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최고가 아닐까. 처칠이 정계를 은퇴한 후 80이 넘어 한 파티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처칠의 젊은 시절 유머 감각을 기억하는 한 부인이 질문을 한다.  “어머. 총리님 남대문이 열렸어요“  일제히 시선이 처칠에게 향했지만, 처칠은 웃으며 대답을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 이미 죽은 새는 새장 문이 열렸다고 해서 밖으로 나올수 없으니까요.“

지금은 시대가 전 보다 많이 달라져서 얼굴을 맞대고 전하는 덕담 내지는 인사를  휴대폰이나, 인터넷, SNS 등 다양한 형태로 전하고 있음을 본다.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람과 덕담을 주고 받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문명의 이기(利器)를 사용하더라도 형식을 갖춘 덕담을 주고 받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덕담이라도 무차별하게 일괄적으로 보내는 것은 아니 보내는 것만 못하다. 복(福)과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이라도 상투적인 문장으로 보내면, 이는 장사꾼의 형태로 밖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진정성이 의심되는 의례적인 덕담은 상대방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덕담과 유머는 우리의 생활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돈 안드는 일이니 주변의 누구에게나 덕담과 유머가 생활화 되었으면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게 있다. “봄비가 잦으면 시어머니 손이 커진다.” 봄에 비가 자주 와서 농사가 풍년이 되면, 시어머니의 인심이 좋아진다는 뜻일게다. 이런 속담을 이용한 덕담은 기대심리를 유발할 수 있는 덕담이기에, 때를 잘 맞추어 사용을 하면 좋은 덕담이 될 듯도 싶다. 덕담이 생활화되면 모두가 웃는 얼굴이 될 듯해서, 금년부터는  덕담이 넘처나는 한 해가 되어지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