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음을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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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선 목사 

 

2월은 양력으로 1년 중 가장 짧은 달이지만 음력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정월달로 4일에는 입춘이 들어있고, 5일에는 기해년(己亥年)이 시작되는 설날이 들어 있어 태음력(太陰曆)으로는 매우 귀중한 달이기도 하다.

서구사람들은 봄의 시작을 춘분(春分)에다 초점을 두지만 동양 사람들은 봄의 기운을 춘분보다 훨씬 앞서있는 입춘(立春)에서부터 느끼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물을 보는 폭이 넓고, 멀리 보는 통찰력과 철학이 들어있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 사도의 두 번째 서신을 보면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벧후 1:9) 라는 말씀이 있는데, 필자는 이 말씀을 긍정적인 마인드(mind)로 접근하여 원시(遠視)의 의미를 조명해 보고 싶다.

원시한다는 말은 시야를 넓히고 멀리 본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요한 예산을 세우고, 위정자들은 정책을 세움에 멀리 내다보는 지혜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눈이 있어도 볼 수없는 소경과 같을 것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자들은 한 치 앞도 보지 못한다. 앞을 내다보는 시력이 없다면 넘어지고 다치는 일이 계속 일어 날 것이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그렇다. 멀리 보는 눈이 없다면 믿음의 자라남도 없고 시험을 이길 수도 없어 모든 일이 될 대로 되라는 방관과 무기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정의의 사람 세례요한을 가리켜 말씀하시면서 “세례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가르치셨다. 이는 요한이 가만히 앉아 세월에 편승(便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해쳐나가면서 도전하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요, 믿음으로 앞을 더 멀리 내다본 선견(先見)자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세례요한의 삶은 불의와 타협하고 실리를 추구하려던 발람과 같은 처세(處世)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대한 확신에 산 사람으로 비록 임금의 잘못일 지라도 책망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순교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거리에서 많이 보려면 시야를 넓히는 길밖에 없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령에서 좁아진 것” 이라며 “너희도 마음을 넓이라”고 했듯이 인생들이 창조주 앞에서 마음을 넓게 함으로 멀리 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2월은 비록 짧은 달이지만 마음을 새롭게 하여 멀리 보며 뜻 있게 산다면 신정(新正)에서 놓친 각오와 결단을 원시하는 자세로 용기를 내어 재도전해 봄으로 새로운 신앙생활의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