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비석(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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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섭 장의사/시카고

매일 River Road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Des Plaines에 이르면 천주교 묘지공원이 양쪽에 있다. 동쪽의 묘지가 오래된 지역이며 지금은 확장된 서쪽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시카고 한인 천주교인들도 많이 사용하는 묘지공원이다. 여기 미국은 공원묘지와 주택가가 가까이 함께 이웃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채 백 년이 되지 않는 이 묘지의 동쪽 Section을 보면 수 많은 비석들이 서있다. 내 키보다 큰 비석들도 있고 무릎까지 오는 비석들도 즐비하며 사이 사이 땅에 깐 비석도 많다. 촘촘히 새운 비석들 속에 돌로 지은 개인 지상묘집 (Mausoleum)들도 적지 않다. 이전에 무심히 보였던 비석들이 요즈음 돈으로 보인다. 저런 비석은 얼마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죽음은 확실하다. 사람들이 젊어서는 영원히 살 것같이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사계(죽음에 대한 계획)를 세우려 하나 경제력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준비 안 상태에서 죽음을 맞으면 가족들이 묘지 한 기를 사서 장사를 지내며 땅에 뭍는 일인 비석을 구입한다. 가족들이 여럿 있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두기 혹은 네기 이상을 구입하여 직립 가족 묘비를 주로 세운다. 비석도 물건이기에 돌의 종류와 색깔과 크기에 따라 가격이 많이 차이 난다. 동포들의 사용빈도가 높은 공원묘지에 무릎 정도 높이의 비석들은 수 천불이 든다. 재력이 있으니 가능했겠지만 비석만 약 삼만 불을 들여 세우는 가정도 있었다. 앞서 말한 지상묘 돌집은 현시로 백 만불은 소요되리라 생각된다. 이것은 장례비 중의 일부분이다. 세월이 흐르며 물가 상승은 계속 하고 있다.

앞서간 현인들과 철학자들이 죽음은 공평하다고 하였다. 우리 모두 동의한다. 모든 사람이 왔기에 모두 가야 한다. 하지만 가면서 갈 때의 경제적인 상황을 어렴풋이 비석으로 남겨둔다. 시간을 칠 팔십 년 뒤로 혹은 백 년 이상 뒤로 돌려도 마찬가지인 같다. 그때에도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150년 된 Waltheim 이라는 유대인 묘지는, 이제는 도시 한가운데 있지만, 그 당시 조상 할 때에는 시카고 시내에서 멀리 멀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지금 그기에는 까맣게 때 뭍은 직립 비석들이 빽빽이 서있다. 비석도 감정적인 지출중의 하나이다. 사별의 아픔과 회한이 최고조 되어있을 때 구입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수 많은 종류가 난립하고, 수요와 공급이 있는 시장경제 속에 상혼은 최대의 이익을 위하여 고가의 물건을 더욱 부채질 한다.

우리 한민족과 이스라엘 유대민족의 생활 풍습에 유사점이 많다. 둘 다 농경생활의 민족인 연고라 생각한다. 이천 년 전 유대인들도 재산의 유무에 따라 장례가 호화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장례비를 감당하지 못하여 도망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현대판 독거 노인 사망과 같다. 그래서 성경 속의 인물, 바울을 가르친 선생 가말리엘은 가난한 사람들도 가족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모두 가장 싼 관을 사용하도록 하였고 망자는 저렴한 흰 베옷 수의를 입도록 하였다고 한다. 지금 천주교인들의 장례 미사를 성당에서 행할 때에 망자 모신 관을 본당 안으로 들이기 전 흰 천으로 덮는다.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표현이다. 사실 관이 만불 이상의 고급 관 일수도 있고 몇 백 불의 저렴한 관일 수도 있다. 공평한 죽음을 맞으며 하나님 앞에 설 때 같은 흰 천(관포)으로 세상의 찌꺼기를 가린다는 의미이다. 개신교에서 성직자들과 찬양대원들이 가운을 입는 이유도 동일하다. 세상의 소속과 표현을 다 감추고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선다는 뜻이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여기 시카고에는 묘지공원과 주택가가 공존한다. 10분 15분 거리의 반경 내에 많은 묘지들이 있다. 멀지 않게 있는 Rand Hill 묘지는 직립 돌 비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청동으로 지면에 까는 묘비를 한다. 그기에는 이력과 부연 설명이 없다. 크고 작음도 없다. 대부분 이름과 두 날짜만 새긴다. 모두가 평등하다. 국립묘지와 같다.

지금부터 백 년 후 아직 이 세상에 오지 않은 우리의 후손들이 그들의 삶을 마칠 때 우리의 묘지를 찾아 온다면, 크고 작은 때 뭍은 직립 비석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낄까? 지금 우리가 오래 된 묘지에서 크고 작게 빽빽이 새워져 긴 세월의 풍상을 겪은 비석을 보며 갖는 생각과는 어떻게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