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싸움, 전쟁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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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봉(시카고한미상록회장)

 

바닷가 고래 길을 따라다니며 인류 변천의 역사를 연구하는 친구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가 돌아오는 3월1일 이면 다시 연구를 위해 떠난다기에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함께 방문한 곳은 역사와 인류문화가 어우러지는 곳이 대개였다. 메디슨 소재 주립대학 Mifflin West Hall에서 공연되는 세계 각처의 춤 공연을 관람하고 주변의 인디언 박물관에 들려 소멸되어 가는 그들의 문화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 내 눈에 비춰진 인류역사의 흥망은 힘을 많이 가진 편, 힘이 강한 사람의 오만에 의해서 시작되는 공통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해마다 있는 날이지만 다가 올 3.1절은 우리민족이 아픔과 희망을 되새김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금년 3.1절 날은 나의 친구를 외지로 보내는 날이기도 하고 조국의 미래가 심히 염려되는 날이기도 하여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국론이 분열된 조국의 현실이 헌법을 도외시하는 국가관(國家觀)이나, 내가 격은 전쟁과 역사를 통해 확인 된 전쟁이 분만하는 비극을 감당하기는 진정 만만치가않다. 그 중에서도 국가에 충성하던 군인이 적의 공격을 받아 젊은 군인들을 희생시킨 그 장본인이 군인들을 보호해야 할 국군의 통수권자의 환영을 받으며 남한을 방문하는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드릴 수가 없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특수 환경과 근대사는 언제나 북한의 주도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체험과 역사를 통해, 천안 함 폭침의 시종(時宗)까지 알고 있는 내 스스로가 현 정부의 시책을 용납할 수가 없기도 하다. 다시 되짚어 보면 1965년 9월 3일 당시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당시 북한의 김일성을 불러다 놓고 대한민국을 상대한 월남방식의 게릴라전으로 적화통일을 종용하고 1970년을 그 완성의 해로 목표를 세웠었다. 그리고 1967년에는 445회에 걸쳐 북한은 게릴라를 침투시켰는데 이 가운데는 격추된 미군정찰기 EC-121도, 현충문 폭파사건도, 서해상에서 우리어선 보호임무를 수행하던 해군방송선 납치사건도 모두 그들의 계획된 수순이었다. 물론 1968년 1월24일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기습한 사건도, 그해 11월 울진과 삼척지역으로 침투한 100여명의 공비침투 사건도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한 계회된 수순이었으며 오늘날의 전교조나 강성노조도 그 유형이 다를 뿐 적화통일의 목적은 같은 맥락이라 본다.

전쟁의 유형은 규모가 크든 작든 그 속성은 상대의 생명과 자산을 파괴하는 것다. 그리고 전쟁행위의 통제는 문서상에서는 명시되어 있지만 실천이 불가능함을 나는 전쟁을 통하여 확인 할 수 있었다. 전쟁 중 자신의 생명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압해야하는 필연성을 동반한 것이 전쟁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노근리 사건이란 북한군이 양민을 방패로 자신을 공격하고 있을 때 양민과 적군을 선별(選別)하의 공격할 능력이 없어 무차별 공격으로 자신과 자신의 방어선을 지킨 것이 양민 학살이란 오명을 남기고 말았다. 세계의 전쟁사(戰爭史) 속에는 제2차 대전 때 미국은 적국 일본계 시민을 집단 수용했던 기록이 있다. 물론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도 적성주민마을을 초토화한 사실이 발견되어 고욕을 치루기까지 했다.

이제 내가 가장 우려되는 말을 더해야 하겠다. 만약 미국과 북한사이 전쟁이 발생하면 우리는 한국계 미국인이란 사실 때문에 과거 일본인처럼 집단 수용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제 남한의 친북 혹은 종(踵)북 세력의 자녀인 문정인의 자녀나 김미화의 딸들이나 그 외에 친북성향의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을 간첩으로 오인 했을 때 그들을 선별할 여유가 없으면 모든 한국계 시민을 집단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를 당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자녀를 미리 선별하여 그들 부모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