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0.4% 배출 파키스탄, 기후재앙으로 가장 크게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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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 자파라바드에서 홍수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길가에 모여 생활하고 있다. 자파라바드=AP 뉴시스

산업화 더뎌 온난화 책임 적지만
집중폭우로 3300만명 피해 집중
재원 부족 탓 재난 대비 못한 영

올해 여름 최악의 기후재난이 파키스탄을 덮쳤다. 평년 대비 2배가 넘는 비가 쏟아져 수천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하고 재산 피해도 막대해 국가 재건에 5년 넘게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화가 더뎌 지구 온난화 책임이 크지 않은 파키스탄이 어떤 국가보다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은 빈국일수록 더 고통받는 ‘기후재난의 역설’을 보여준다.
3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은 “세계 온실가스 생산량의 1%도 배출하지 않는 파키스탄이 지형적 원인으로 기후 재난을 겪고 있다”며 “파키스탄인들 사이에도 불공정하다는 의식이 퍼져있다”고 보도했다. 1959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가운데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양은 단 0.4%다.
미미한 책임에 비해 파키스탄은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이어진 폭우로 약 1,200명이 숨졌고, 3,300만 여 명이 피해를 봤다. 홍수가 휩쓴 지역에선 물이 오염돼 설사, 피부병 등의 수인성 질환이 퍼지고 있다. 정부는 경찰과 군대 등 가능한 인력을 모두 동원해 구호·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피해 범위가 워낙 커 회복까지 5년 넘게 걸릴 것으로 추정한다.
파키스탄의 피해를 키운 요인은 두 가지다. 파키스탄의 지리적·지형적 특성이다. 파키스탄은 여름철 강한 비를 동반하는 계절풍 ‘몬순’ 우기에 1년 강수량의 80%가 내린다. 여기에 지구 온난화로 해양 증발량이 늘어 강수량이 폭증했다. 극지방을 제외하고 최대 규모의 빙하가 파키스탄 북부에 있는데, 폭염에 빙하가 녹아내린 것도 물난리를 악화했다.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정부 재원과 인프라 부족이다. 지난해 파키스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500달러(약 204만 원)에 그쳤다. 당장 생필품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재해 방지 투자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번 홍수 때도 부실한 댐과 제방이 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인명피해를 키웠다. 지난달 말 파키스탄 정부는 “경제 문제와 씨름하던 차에 재난을 겪게 됐다”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불공정한 기후 재난으로 고통받는 빈국이 파키스탄만은 아니다. 올해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도 폭우로 수백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마셜군도, 키리바시, 몰디브 등 태평양 섬나라들은 해수면이 상승해 국가의 존립이 위기에 처했다. 지난 2월 발표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 ‘기후변화 2022:영향, 적응 및 취약성’에 따르면 서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의 저개발국가에서 2010~2020년 기후재난으로 인한 사망률은 타 지역보다 15배나 높았다.
기후 재난의 악화는 의도치 않게 이런 불평등을 평등한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 다만, 가난한 국가든 부유한 국가든 모두 기후재난에 고통받는다는 의미에서 ‘질 낮은 평등’이다. 올해 여름 유럽 대륙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식량·전력 생산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산불로 20만 에이커(약 81만㎢)가 탔고, 켄터키에선 집중 호우로 39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파하드 사이드 기후영향과학자는 BBC방송에 “기록적인 폭우는 가난한 국가만이 아니라 그 어떤 국가도 파괴할 수 있다”며 “(파키스탄의 사례가) 지속적으로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 기후변화를 막겠다고 약속한 모든 정부에게 경종을 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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