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위안부 문제 일반화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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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봉완(사학박사/시카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시카고협의회(평통/회장: 정종하) 주최로 위안부(제2차 전쟁중의 성노예) 주제 “귀향” 이 지난 10월 6일 한인문화회관에서 무료로 상영됐다. 상연후 몇몇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기막힌 일이 있었느냐고… 26년을 이 운동에 종사했었고, 적어도 피해당사자국가인 한국인들은 다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본인에게는 놀라운 질문이었다. 앞으로도 이같은 기회가 자주 있어야겠다고 느꼈다.

평통을 한인사회내의 주류기관이라 보면, 변두리에 있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영화를 평통에서 주관하여 상연했다는 것은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평통은 대한민국 국민의 1980년 10월 27일의 투표에 의하여, 1981년 3월 14일에 창립돼 37년간 존재 해온 존경받고 있는 기관이다. 그런가하면 위안부 문제만을 다루는 기관은 시카고에는 아직 조직적으로 존재해 있지 않다. 자원 봉사자 몇사람이 모여 소녀상 건립에 대하여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시카고의 소녀상 건립은 31대 시카고 한인회장단(서정일 회장)에서 시작하여, 모금위원장을 루시 백 박사로 임명하였다. 32대를 건너, 현재 33대(서이탁 회장, 이근무 이사장)와 함께 임원과 자문 몇사람이 모이고 있는 중이다.

위안부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에 발표하면서부터 이미 27년이 넘었다. 위안부 운동이 한국에서 열린 것은 같은 해부터 27년, 미국에서는 다음해부터 26년이 되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위안부 문제는 한국이나 미국의 한인간의 기존 세력, 주류사회에서 거부당했거나 외면당하여 변두리의 존재를 면하지 못했다. 일본 대사관 앞 데모의 1천번째 되는 날인 2011년 12월 14일에 소녀상 동상이 건립되면서 일반사회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국민의 과반수, 특히 젊은 세대가 위안부 문제를 자신들과 직접관련 돼있는 문제로, 또한 세계를 휩쓸고 있는 “미투 #Me Too” 운동과 연결시키고 있다.

민중운동으로 시작한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심각한 국제 문제가 되어 있다. 직전 박근혜 정권은 2015년 12월 28일에, 희생자와 지지자들과 상의도 없이 구두의 한일합의를 발표하여 큰 파동을 일으켰다. 더 나아가, 극우 신조 아베 일본 정권은 소녀상 건립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고 있다. 2016년 초에는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세워져있는 소녀상 위치를 문제 삼아 3개월간(1/8-4/8) 국교를 단절한 일까지 있다. 아베 정권은 계속, 소녀상 건립에 간섭하고 지방 정부들에게 압력을 가하며 소송까지 걸고 있다. 최근에, 일본 상업도시 오사까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2년전에 건립된 위안부 동상을 문제 삼아, 자매 도시관계를 단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위안부 운동 봉사자들은 꾸준하다. 일반인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계속 노력해 왔고 또 버티어 나갈 것이다. 일본이 못되게 굴면 굴수록, 우리의 결의는 더 확고해 진다. 그들은, 가해자국인 일본으로부터 공식 사죄와 보상을 받아, 연로하고 죽음이 다가오는 희생자 할머니들(28명 생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인권을 회복하고 그들의 한을 풀고 배상을 받아드리려 한다.

세계적으로 위안부 문제는 차, 차, 일반화되고 있으나 시카고에서는 아직 그 단계에 못 닿았다. 시카고 한인사회에서는 많은 동포들이 무관심하거나, 창피하다고 피하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비난한다. 이런 상태에서 지난 6일 시카고 평통에서 “귀향”을 상연한 것은 위안부 문제의 일반화의 첫걸음으로서, 참으로 뜻있는 일이다. 26년을 위안부 운동에 몰두했던 80이 넘은 한국태생의 한 여인은 눈물겹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