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예수님은 경찰을 없애자고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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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미주 어느 지역 한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손님에게 마스크를 써 달라고 요청했다가 폭행을 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럴 때 우리는 일단 의지할 것이 경찰 신고 밖에 없는데 지금 미국에는 ‘Defund the Police’ 구호가 난무한다. 그래도 정작 우리는 생존을 위해 진실의 일부만 부각된 그 프로테스트 현장에 ‘한인 얼굴 도장’을 찍으러 나가야 하는 눈치 게임을 하고 있다.

약자인 우리는 신앙이 있든 없든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기꺼이 내 주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잘 따르고 있는 것 같다(마 5:39-40). 그런데 예수님은 정말 우리가 이렇게 매일 뺨 맞으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리로 가득한 이 험한 세상에 연약한 양 같은 우리를 보내시는 그분의 마음은 오히려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는 자기 보호의 당부에 있다. 억울한 일 당하지 않도록 몸 조심하고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의 가르침은 상당 부분 메타포에 입각한 ‘과장법’(hyperbole)이다. 어떤 포인트를 강조하기 위해 현실을 넘어서는 극단적 표현이나 예들을 사용하여 깨우침을 주는 충격요법의 수사법(修辭法)이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마 5:29-30)는 말씀을 그대로 따라하면 나를 비롯하여 몸 성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겉옷까지 내 주라’ 하신 예수님이 정말 벌거벗고 다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며 사역을 위해 돈 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회계를 두셨는가 하면(요 13:29) 악당들의 습격을 막기 위위해 무기도 소지하게 하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눅 22:36-38 참고).

산상수훈은 결코 문자적으로 지켜야 하는 법전의 조항이나 계율을 의도한 것이 아님을 잘 알아야 한다. 산상수훈의 ‘과장법’은 그대로 옮겨서 사회의 실정법으로 사용할 규정으로 주신 것이 아니다. 이런 과장법을,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공법(公法)과 혼동해서도 안 된다. 사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은 사회질서를 위한 범죄 처벌의 고대식 공법이다(출 21:24, 레 24:2). 힘 좋다고 남은 눈을 멋대로 상하게 하는 폭력과 약탈을 억제하려는 엄격한 인도주의적 법령이다. 인간이 워낙 악해서 이런 법령이 없으면 약한 사람만 죽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인용하여 ‘과장법’의 이미지로 사용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제자들이 개인적으로 사랑과 용서와 관용의 내적 정신으로 살라는 당부에 있다. 정말 두들겨 맞고 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이들의 보호를 위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공법이 질서유지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기대하셨을 것이다. 이유 없이 맞고 사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은 아니다. 공법을 없애 세상을 야수들의 정글로 만드는 것은 절대로 예수님 뜻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Defund the Police’라는 구호는 경찰 변화를 요구하는 ‘과장법’일까 아니면 정말 경찰이 없기를 바라거나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직설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