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28] 물고기 사인을 달고 다니는 분들에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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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한 때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차량에 물고기 사인을 부착하고 다녔다. 물고기 사인을 보면 차 주인이 ‘고백적 그리스도인’임을 짐작한다. 그런데 그렇게 물고기 사인을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정답을 대는 사람이 무척이나 드물다. 혹자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신 있게 설명한다. 그렇게 생각해서 달고 다녔다면 그 역시 좋은 마음이기는 하지만 정보 차원에서는 많이 빗나간 추측이다.

물고기 사인은 고대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낸 ‘백크로님’(backronym)이다. backronym은 단어의 첫 자만 모아서 만들어진 ‘약성어’(略成語, acronym)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에 원래 다른 뜻이 있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신멋져’라는 건배사의 숨겨진 뜻이 ‘당당하게 신나게 멋있게 져주면서 살자’인 것과 같다.

물고기를 뜻하는 그리스 단어는 ‘익투스’(ΙΧΘΥΣ)다. 여기서 입실론 Ι는 예수의 그리스어 Ίησοῦς(예수스)의 첫 자이다. 마찬가지로 각기 그리스어에서 ‘키’로 읽히는 X는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 = 그리스도), 수학시간에 익숙하게 많이 사용하던 쎄타 Θ는 Θεοῦ(쎄우, 하나님의), 윕실론이라 읽는 Υ는 Υἱός (휘오스, 아들), 역시 수학에서 많이 사용하던 시그마 Σ는 Σωτήρ(소테르, 구세주)의 첫 자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이니셜, 즉 첫 알파벳만 따서 모아 놓으니까 묘하게도 물고기를 뜻하는 ‘익투스’라는 단어가 된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백크로님’이다.

잘 모르는 서구 영미권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고 있듯이 Jesus Christ에서 Christ는 성(姓, last name)이 아니고 히브리어 ‘메시아’(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를 그대로 뜻으로 옮겨 적은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의 영문 발음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직함이다. 그래서 그냥 이름처럼 된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아)입니다’ 하는 신앙고백에서 술어(述語)가 생략된 상태의 단어 조합이니 사실은 아주 짧은 신앙고백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에 그분의 신적(神的)인 정체를 알려주는 것이 뒤이어진 ‘하나님의 아들’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비롯되어 세상에 오신 유일한 분이라는 뜻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심이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죄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구세주’(savior)이시다. 아주 간결하게 중요한 신앙의 고백이 여기에 다 담겨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어렵게 숨어서 신앙을 지키던 박해 시절의 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자신의 정체를 알리고 이렇게 꽉 차게 간결한 신앙을 고백하는 암호로 사용된 것이 이 ‘백크로님’으로서의 물고기 사인이었다. 이 사인은 지금도 고대의 여러 고고학적 유물이나 장소에서 발견되고 있다. 어쩌면 이 물고기 사인은 4세기에 현재 형태로 구성된 사도신경보다 더 오래된 신앙고백이다. 오늘도 고백한다. 익투스(ΙΧΘΥ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