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29] 목사가 제사장? 저는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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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이 며칠 전 하나님 품에 안겼다. 이분은 ‘사제’였다. 가톨릭의 경우, 신부(神父, Father)는 호칭이고 공식 직명(職名)이 사제(司祭, priest)이니까 직함의 뜻으로 보자면 구약의 제사장 역할을 그대로 답습한 것 같이 들린다. 현대 개신교 목사의 역할을 구약의 제사장의 것에 비교하는 말도 종종 듣는다. 히브리어의 ‘코헨’을 개신교 성경에서는 ‘제사장’, 천주교 성경에서는 ‘사제’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천주교 신부를 개신교식으로 표현하면 ‘제사장’이 맞다. 확실히 예배 시 사제의 역할은 목사의 것보다 훨씬 더 예전(禮典)적이다. 반면 개신교 목사는 예전(禮典, liturgy)보다는 설교에 더 치중한다.

그런데 고대 유대교의 제사장이 하는 일을 보면 오늘날 목사의 역할과는 천양지차이다. 우선 그들은 입을 열 필요가 거의 없었다. 자신이 1세기의 제사장이었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보고에 따르면 성전의 제사장들은 아비규환의 전투 상황 속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당일 제사의 업무를 중단 없이 계속했다고 한다(유대전쟁사 1.148). 마찬가지로 한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글에서도, 약 750명의 제사장이(약간 과장된 숫자. 아마 1주일 동안 교대로 봉사하던 숫자일 것) 성전에서 엄청나게 많은 희생제물을 잡아서 제사를 올리고 있었는데 마치 그곳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는 기록을 담고 있다(<아리스테아스의 편지> 92-95). 제사장의 직무는 말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된 책무는? 성전에서 최소한 매일 두 번씩 올리던 번제(타미드)에 대해, 탈무드의 기초가 되었던 미쉬나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를 요약하여 들어보자. “양을 묶어 평평한 상위에 올려놓는다. 한 제사장은 양 뒤에 서서 칼로 목을 딴다. 다른 제사장은 그릇에 피를 받아 그 일부를 제단에 뿌린다. 나머지 피는 제단 아래 쏟아 부어 수로를 따라 성전 밖으로 씻겨 나가게 한다. 죽은 양의 뒷다리를 걸어 거꾸로 매달아 가죽의 일부를 벗긴다. 제사장은 다시 양을 상위에 올려놓고 가죽을 완전히 벗겨낸다. 그러고 나서 심장을 도려내고 다리를 자른다. 복부 쪽을 열어 내장들을 꺼낸다. 또 다른 제사장은 그 내장을 받아 깨끗하게 물에 씻는다. 이제 몸체를 구분에 따라 정교하게 도려낸다. 뼈가 하나라도 부러져서는 안 된다. 그렇게 도려낸 부분들을 잘 씻어 소금에 절인다. 그리고 준비된 모든 것을 불에 태워 번제(燔祭)로 올린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제사였다. 개인이 가져오는 속죄제, 속건제의 경우 이렇게 발라낸 고기를 제사장이 성전에서 먹었다. 화목제의 경우 가슴과 넓적다리만 제사장이 취하고 나머지 부분은 잘 토막을 내 제사자가 나가서 먹을 수 있도록 돌려주었다. 이런 개인 제사를 하루 종일 처리하는 것이 제사장의 업무였다. 유월절 같은 명절에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약 30~50만 명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다. 당대의 관행대로 10명당 한 마리의 어린양을 잡았다 해도 약 3~5만 마리가 도살되어야 했다. 엄청난 기술과 속도,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물론 온 몸은 짐승의 피로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실상은 전문 도살업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목사인 내가 지금 실력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는 전문 기술이었다. 목사가 제사장일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