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31] 외식, 배우, 관종, 그리고 쇼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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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팬데믹 때문에 오랫동안 소위 외식을 잘 못했다. 백신 접종 후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외식이었을 사람들도 있다. 우리 집 근처 유명 음식점 주차장이 메워지기 시작했다. 성경에 나오는 ‘외식’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이 외식(外食)과 그 외식(外飾)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더구나 후자 ‘외식’ (外飾)은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성경 내부 용어였기에… 지금 독자들 중에서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비판했던 ‘외식하는 자’를 ‘외식 좋아하는 미식가’로 생각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당시의 종교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서기관들과 당시의 문화권력자들이라 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을 비판할 때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우리 성경에서 ‘외식하는 자’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휘포크리테스’(ὑποκριτής)는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연극배우’의 뜻이었다. 유대 사회에는 없었던 생소한 외래 문화 현상이었기에 당시 자신들의 생활 언어였던 아람어 그리고 구약성경을 기록했던 문어(文語)로서의 히브리어에 이에 상응하는 개념 자체가 없어 그대로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을 해서 그리스어 발음대로 ‘휘포크리테스’라고 말하고 표기를 했었다. 우리말의 ‘라디오’ 또는 ‘텔레비전’ 같은 외래어였던 셈이다. 이 말이 그대로 영어로 옮겨져 오늘날 ‘위선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hypocrite이 되었다.

당시 그리스-로마 연극배우들은 얼굴에 자기가 연기하는 인물의 탈을 쓰고 말하며 동작했다. 그래서 배우 자신은 실제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고 그가 쓰고 있는 탈이 관객이 볼 수 있는 캐릭터로서의 겉모습이었다. 그래서 배우의 말과 행동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쓰고 있는 탈의 것이었고 배우의 실체는 연기를 하는 동안 숨겨져 드러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종교 문화 권력자들의 행태를 이렇게 연극배우의 우스꽝스러운 탈 쓴 연기에 빗대어 그 실상을 폭로하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함을 과시하기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기도가 관객 앞에서 멋지게 보이려 하는 연기가 된 것이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ὑποκριτής)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마 6:5). 구제의 나눔은 어려운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여 비롯된 이웃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멋진 인간임을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데 구제를 이용하는 연극배우들이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ὑποκριτής)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마 6:2).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런 사람들을 ‘관종’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만 마음을 쓰는 ‘관심 종자’라는 비속어의 줄임말이다. ‘외식하는 자’는 요즘의 젊은 용어로 번역하면 ‘관종’이 될 것이다. 한국의 현 정권이 너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겉모습의 쇼 연출에만 급급하다가 ‘휘포크리테스’로 낙인 찍혀 보궐선거에서 참패를 했다고 한다. 가면을 벗자. 탈을 버리자. 진실이 최고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