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46] 무속인과 역술가, 그리고 성경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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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요즘 한국 대선에서 무속인 논쟁이 치열하다. 사실 역술 현상은 역사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이다. 신약성서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점성술, 주술, 신탁(神託, oracle) 조회 등의 역술적 신비 추구가 민간 차원에서 널리 퍼져 있었다.

우리에게 「영웅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 당시의 지성 플루타르크는, 델피의 아폴로 신전이 한때 많은 영웅 호걸들을 유인할 만한 신탁의 신통력을 가졌다가 점차 그 영향력이 쇠퇴해 가는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려 애를 썼다. 그는 델피의 여사제를 몰아(沒我) 상태로 이끌어 신탁을 내놓게 하는 것이 ‘다이몬’ 또는 ‘다이모니온’이라고 보았다. 다이몬이란 영적 존재가 영매(靈媒)인 여사제에게 임하여 신의 생각을 전달하면서 예언과 점술의 신탁이 있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플루타르크가 묘사한 당시 여 사제 모습은 이른바 ‘신들림’이 있을 때 오늘날 무속인들과 참 많이 유사하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귀신’으로 번역되어 있는 단어가 바로 이 ‘다이몬’이다. 플루타르크 같은 이교도가, 신통력을 행사하여 삶에 도움을 얻기 위해 활용하던 다이몬을, 성경은 더러운 영으로 봐서 ‘귀신’으로 번역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런 귀신(다이몬)들을 쫓아내신다(마 12:28). ‘다이몬’이 인간을 예속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귀신의 신통력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 귀신들은 보통 인간들이 감지하지 못한 예수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보기도 한다(막 1:24). 그러나 힘이 있고 예견력을 지니고 있다 해서 함께 지내도 괜찮은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신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자신의 노예로 삼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술에 신통력이 있다면 그것은 그 뒤에 역사하는 영적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신통력이 모두 사기라고 함이 아니다. 그러나 신통력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운명과 삶을 그 영적 세력에게 맡기는 것은 스스로 귀신의 종이 되겠다 함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설사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사는 것이다. 귀신의 신통력을 이용해 일시적 행운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善)과 의(義)를 선택하는 것이 성경이 요구하는 삶이다. 그런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강복이 있다.

악한 영의 조종과 통제 속으로 우리를 유인하는 역술 현상에 그리스도인들이 선을 그어야 함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하게 역술 행위에 의존하는 일을 금한다.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