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59] 우리···대충 흘리면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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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추수 때 곡식을 베다가 한 단을 흘리고 왔다. 부부 사이에, 또는 종들이 같이 도왔다면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냐’고 구박을 하거나 서로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에서는,
이런 경우 ‘당장에 가서 찾아오라’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 한다. 그러면 오히려 복을 받을
것이라 했다(신 24:19). 감람나무, 즉 올리브 나무에서 열매를 딸 때 너무 철저하게 하지 말고
대충 떨어서 주워 오라 한다. 또 그렇게 대충 떨다가 남은 것이 있으면 사람 시켜서 일일이 챙길
것 없이 역시 그냥 놔 두라 한다. 지나가는 나그네나 고아와 과부가 따 가도 좋게 말이다(신
24:20). 포도원에서 포도를 거둘 때도 마찬가지다. 쭉 한 번 훑은 뒤 여기저기 송이가 남아
있어도 다시 가서 따오지 말라 한다. 역시, 생존수단이 없는 극빈층인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다(신 24:21).
법학에 ‘미필적 고의’(dolus eventualis)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어떤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결과의 발생을 인지하여
그냥 받아들이는 심리 상태다. "내가 이러면 누가 죽을지도 몰라. 그러나 죽어도 할 수 없지"
하는 마음이다. 이 미필적 고의는 범죄다. 구약의 율법은 선행에 있어서의 미필적 고의와 같다.
“곡식을 흘리면 누가 가져갈지도 몰라. 그러나 가져가도 괜찮고 오히려 더 좋아” 하는 심정이다.
이것이 다윗의 증조부며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었던 보아스가 모압 여인 룻을 위해 저질렀던
아름다운 ‘미필적 고의’였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룻 2:15-16). 일부러 흘리면서
살라는 법이다. 미필적 고의의 이웃 사랑이다.
이렇게 고의적으로 흘리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신 24:18).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 때 많이 힘들고 억울해서
부르짖었고(출 2:23)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출애굽’으로 구원하셨다. 어려울 때
은혜를 입어 지금 살고 있으니 이제 당신이 옛날 당신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전달하라는 명령이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정신이다. 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대충 흘리면서 사는 사람이다.
은혜와 사랑은 효율성이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다.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악착같지
말라는 뜻이다. 미필적 고의로 손해를 보며 사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진정한 예수의 제자다.
우리, 조금씩은 흘리면서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