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바닷마을 다이어리(Our Little Sister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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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고립되고 불안정했던 지난 일년, 소란한 마음을 가만히 놔둘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 흙탕물이 가라앉으니 어쩌자고 어린 시절 형제들과 복작이며 지내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의 부모님보다 훨씬 나이를 먹은 지금

왜 그 시절이 다가온 걸까. 가족을 화두로 삶의 사소함도 아름답고 따뜻하게

빚어내는 ‘고레에다 히로카주’ 감독의 영화로 위로와 휴식을 얻자.

도쿄 외곽 ‘가마쿠라’시. 바닷가의 오래된 저택에 세 자매가 산다. 간호사인 29살 장녀 ‘사치’는 집안의 기둥이고, 22살 은행원 ‘요시노’는 남자들이 수시로 바뀐다. 19살 막내 ‘치카’는 자유로운 영혼. 아버지는 15년전에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고 엄마도 어린 세딸을 두고 재혼했다. 사치는 할머니가 남겨준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부모 역할을 해왔다. 어느 날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한다. 거기서 수줍고 예쁜 13살 이복동생 ‘스즈’를 만난다. 아버지는 스즈의 엄마가 죽자 또 장가를 갔다.

아버지 미망인이자 스즈의 계모는 스즈를 싫어한다. 사치는 스즈에게 같이 살자고 한다. 스즈가 집에 들어 오고 단조롭던 세 자매의 삶에 즐겁고 아픈 잔잔한 파문이 일어난다. 스즈는 마을 중학교로 전학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자매들은 착한 스즈에게 애정과 연민을 느낀다. 사치는 스즈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고 요시노는 발톱에 메니큐어를 발라주고 옷을 골라준다. 아버지의 기억이 없는 치카는 스즈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사치의 애인은 유부남이다. 애인이 부인과 이혼하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했던 짓과 똑같다는 생각으로 괴로워 한다. 요시노는 번번히 남자에게 이용만 당하고 직장은 스트레스가많다. 삶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엄마가 갑자기 찾아와서 스즈를 맡은 것에 충고를 늘어놓자 사치는 매몰차게 엄마를 비난한다. 엄마는 용서를 빌면서 떠나고 사치는 엄마를 이해할 것도 같다. 자매들은 여름 밤 유카타를 입고 불꽃놀이를 하고 마당의 매실나무에서 매실을 따다 할머니의 비법대로 술을 담근다. 잘 담근 매실주는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도쿄에서 기차로 한시간 걸리는 가마쿠라의 사계절을 담은 화면이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기찻길, 햇살에 반짝이는 바닷 물결, 비에 젖은 수국, 가을 거리에 쌓인 형형색색의 낙엽. 치밀하고 섬세한 촬영 덕에 영화 내내 고운 수채화 속을 걷는 기분이다. 네 자매가 사는 고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로 다정하고 푸근하다. 집 기둥에 동생 스즈의 키를 새기고 마당에서 머리를 잘라주는 사치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잔멸치덮밥, 구운 고등어, 삶은 국수, 어묵 카레같은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도 즐겁다. 현악 사중주를 사용한 음악은 지친 영혼을 달래준다.

속삭이듯 부드럽고 따뜻하고 그리움이 가득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