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바이스(Vic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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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크리스마스 날은 낮에 영화관에 간다. 식구들과 느지막하게 브런치를 먹고 오후 2시반경 영화를 본다. 보통은 즐겁고 환상적인 디즈니 무비나 스펙터클한 대하극을 보는데, 이번에는 정치, 역사를 다룬 전기 영화를 골랐다. 정치물은 별로 좋아하는 쟝르가 아니지만 주인공을 맡은 ‘크리스챤 베일’의 놀라운 변신을 예고편으로 보고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름과 직책만으로 기억하는 ‘딕 체니’의 실체와 주변 인물들, 그가 당시 대통령 막후에서 행사한 힘과 결정이 어떻게 미국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었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는 지를 실랄하고 풍자적으로 다루었다. 영화에 의하면 체니는 권력에 탐닉한 악의 핵심이다.

  젊은 시절 체니는 술때문에 예일대에서 쫒겨나고 고향 와이오밍 시골에서 전기 배선공으로 일한다. 여전히 술에 쩔어 살던 그는 제대로 살지 않으면 떠나겠다는 아내 ‘린’의 경고에 정신을 차린다.

1969년 체니는 의회 인턴으로 들어가서 ‘도널드 럼스펠트’ 밑에서 정치를 배운다. 조용하고 치밀하게 워싱턴 인물들을 관찰하고, 정치의 생리를 간파하면서 빠르게 성장한다. 야심많은 린은 남편을 격려하고 부추기며 더 큰 권력으로 나아가게 헌신하며 돕는다.

체니는 포드 대통령 시절 대통령 수석보좌관을 지내고, 와이오밍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친기업정책을 밀어 붙여 화석연료 분야에 많은 혜택을 주는데, 그 덕분인지 나중에 석유기업 ‘할리버튼’의 CEO로 취임한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을 치룰 때 국방장관을 지내고, 아들 부시가 대권주자로 나오면서 부통령을 제안한다. 한때 술주정 뱅이로 낙인 찍혔던 부시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대통령에 출마했다. 체니는 단순하고 모자란 부시에게 소위 대통령의 “평범하고 일상적인(mundane)” 업무에 속하는 에너지나 외교 분야는 자신에게 일임할 것을 주문하고 대선에 뛰어든다. 부시가 당선되고 체니는 자신의 최측근들로 팀을 꾸리고 외교와 안보 라인을 장악한다.  9/11이 발생하자 실체없는 적 대신 미국민들에게 증오할 대상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던져주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수많은 미군들과 전쟁터 민간인들이 죽고, 포로들에 대한 고문과 잔혹 행위가 벌어진다. 그 결과로 또 다른 테러 세력인 Islamic State(IS)를 태동시키게 된다. 체니는 부시 행정부 8년간 대통령보다 더한 파워를 행사하고 독단적인 결정을 주도한다.

 고집세고 권력지향적인 한 정치인이 어떻게 미국과 세계를 쥐고 흔들었는지, 출발부터 정점까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40파운드를 찌우고 벗겨진 머리와 조용하고 날카로운 눈빛과 말투로 체니를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은 압도적이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대통령을 우습게 알면서 힘의 행사를 즐기는 체니가 아내와 두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이중적인 모습은  왠지 불편하고 화가 난다. 체니보다 더 기억에 남아있는 헨리 키신저, 콜린 파월, 콘돌리자 라이스등이 등장하고, 포드, 카터, 레이건, 부시, 클링턴, 아들 부시 대통령까지 미 정치사의 중요한 인물과 사건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우리가  잘 몰랐거나  잊고있었던 역사공부까지 하게된다.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미국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술꾼 남편을 백악관의 실세로, 세계 정세를 주무르는 실력자로 조련한 린을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도 뛰어나다. 올해 ‘골든 글로브’ 주요6개부문 후보에 올랐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현재의 미국과 대한민국의 정치를 생각하게 만든다. 재미와 유머 가득한  복합적인 작품이다.